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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마이클 크래이그-마틴 전시회 : 현대인들의 취향

by WritingStudio 202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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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직접 촬영

나에게 개념 예술(Concept Art)은 흥미로은 분야이다. 관련 전공도, 공부도 하지 않아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인기 많고 유명한 개념 예술 작품들은 현 시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유명한 개념 예술 작품들은 경매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린다. 그래서 개념 예술이라고 하면 '뭐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부자들이 엄청 비싸게 사고 파는 작품'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내 생각에는 언론에 보도가 되는 이러한 어마무시한 가격들이 바로 개념 예술을 즐기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본인이 그림을 살 생각이 아니라면 뉴스에 나오는 예술품 경매가 같은건 그냥 읽어넘기면 된다.

 

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는 어떤 아티스트, 혹은 어떤 작품이 왜 인기가 많은지이다. '이런 게 뭐 그렇게 유명해?' 라는 불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불만을 표해도 유명한 작품이 안 유명해지지는 않는다. '유명'은 개인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결과이며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왜'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개념 예술을 즐기는 방법이다. 사실 유명해진 아티스트도 자신이 왜 유명해졌는지 모른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도 본인이 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마음대로 유명해지지도 못하는 일이지만 한 번 유명해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안 유명해지기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왜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이유들은 찾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이(과거인도 아니고 미래인도 아니고 현대인이) 그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도 그 이유에 대해 그가 만든 작품들을 직접 보고 생각해보기 위해서 전시회장으로 갔다.

사진: 직접 촬영(촬영 금지 표시가 붙은 작품 외에는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개념 예술가이다. 개념 예술은 어떤 개념(concept)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이다. 즉 개념 예술가는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마음대로 표현한 후에 '나도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개념 예술가라고 말을 하려면 본인이 만든 작품이 어떤 개념을 토대로 만들어졌는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개념 예술가는 '왜'를 설명해야 한다. 물론 '왜'만 가지고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 작품 완성도도 뛰어나야 한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이 사용하는 소재는 너무도 일상적이다. 클립, 알파벳, 공, 스마트폰, 노트북, 의자, 와인 따개, 신발, 에스프레소 머신 등 우리가 모르는 소재는 하나도 없다. 소재상으로는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림체도 특징적이지 않다. 붓터치가 개성이 넘친다거나, 직선이나 곡선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다르다거나 하지도 않다. 오히려 아주 특징이 없다. 너무 특징이 없어서 그것이 특징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직선과 곡선은 그야말로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정리하면서 상상했을 법한 그야말로 직선과 곡선이다. 사용하는 원근법도 아주 기본적인 정통 원근법이며 비례 역시도 아주 정확하게 맞는다.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시점을 뒤튼다든가 현실에는 없는 구도를 표현한다든가 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선의 정석, 원근법의 정석이다.

 

이런 미술품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런건 나도 만들겠다'라고. 하지만 이는 매우 틀린 생각이다. 특징이 없다고 하여 만들기 쉽지는 않다. 정확한 선과 정확한 원근법을 쓰려면 이 '정확함'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필수다. 선이든 구도든 아주 조금도 벗어나면 안 된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전시실 하나 정도를 둘러보니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이 뭔지, 작업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파악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세부적인 것들에 대한 관찰이 관람 포인트가 되었다. '이 일상적인 소재가 어떻게 이렇게 독특하고 예쁘게 보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작품을 세세하게 살펴보아야 했다. 보면 볼수록 선 끝 처리가 눈에 띄었다. 선은 경계를 표현하기 때문에 때문에 어딘가에서는 어떤식으로든 서로 만나게 된다. 선들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무언가 눈에 거슬리면 작품 퀄리티는 확 떨어진다. 독특한 작품을 구경하면 현실에는 없는 무언가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매우 섬세한 활동이다. 그래서 눈에 뭐라도 하나 거슬리게 되면 그 작품은 바로 현실로 떨어져버리며 관람자가 느끼던 환상도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그렇기에 마이클 크레이그-마틴도 결과물을 만들 때 이 '깔끔함'에 더없는 정성을 가했다. 그는 특징을 지우기 위해서 그런 깔끔한 작업 방식을 택했지만 되려 그런 방식이 그를 특징짓게 되었다.

사진: 직접 촬영. 작품 일부.

 

사진: 직접 촬영. 작품 일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을 특징짓는 또 하나는 바로 '색'이다. 색은 정말 미묘하다. 인간은 눈으로 엄청나게 많은 색을 구별한다.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색을 잘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도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색에 무의식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색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똑같은 스케치에 어떤 색을 입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일상적인 물건에 이상적인 선과 인상적인 색을 주입하여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한 물건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개념', 즉 작업 주제이다. 이를 생각하지 않고 드로잉만을 본다면 그가 만든 작품들은 심심하다. 스마트폰, 야구공, 축구공, 컵, 캔, 글자 등 우리가 너무도 매일같이 늘 보는 물건들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속 그 물건들은 우리가 알던 물건들과는 전혀 다른다. 작품 속 물건들은 현실 속 물건과는 달리 깔끔한 선과 독특하고 깨끗한 색을 가졌다. 현실 속 물건들은 대개 지저분하고 때가 타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속 물건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가 예술을 통해 즐기는 표현방식이며 또한 그에게는 놀이이기도 하다.

 

자, 작품을 다 둘러 보았으니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이 중심으로 잡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알았고 그가 어떤 식으로 작품활동을 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왜 이렇게 유명하고 인기가 많을까?

 

개념 예술가가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으려면 두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첫째, 그가 추구하는 '개념'이 미술계와 미술 평론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인정이란 한 예술가가 추구하는 개념이 흥미롭고 인정할만한지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도 인기를 얻는가를 시험한다. 이 두 단계를 통과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않다. 왜냐하면, 이는 개인 능력만으로는 통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인정'이란 결국 시대적이고 주관적이며 유행적인 면도 무시 못한다. 따라서 어떤 예술가가 유명해졌다면 이는 그가 하는 예술과 지금 시대가 무언가 서로 잘 맞아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얼까.

 

개인적으로는 현대인들은 지금 '머리 아프지 않은 재미'에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불편함이 없는 재미'를 선호하는 성향이 크다고 본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이 만드는 작품들은 불편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선이나 색 그리고 형체가 바로바로 눈에 들어온다. 복잡한 선들이 마구 뒤엉킨 작품들에서조차 '복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린 제프 쿤즈가 만든 '토끼' 같은 작품도 그저 예쁘다. 데이비드 호크니도 마찬가지다.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는 초기에는 매우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그에게 '성공'을 쥐어준 작품은 '큰 풍덩' 같은 보고 있자면 아무런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탈감정적인 작품이다. 현대인들은 무언가 불편하고 머리아프고 복잡한 감정을 일시적으로나마 느끼지 않기를 바라기에 그런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전시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얻었다.

 

선입견을 버린다면 개념 예술 감상은 꽤나 재미있는 활동이다. 하지만 개념 예술을 재밌게 감상하려면 앞서 말했듯 '이게 얼마짜리래'는 지워내야 한다. 가격은 작가가 매긴 것도 아니고 당신이 매긴 것도 아니다. 예술품 경매 시장에서 책정되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작품 평가와는 또 다른 매커니즘으로 결정된다. 그것은 그들이 알아서 하게 두면 된다. 감상자는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첫째, 이 아티스트는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걸까? 둘째, 이 아티스트가 표현하는 개념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는 걸까?

 

위 두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스스로에게 대답을 해보면서 전시회를 관람하면 '이게 뭐지?'나 '이게 그렇게 비싸대' 외에도 다른 즐거움거리를 꽤나 많이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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