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는 2010년 개봉작이며 감독은 이창동이다. 이 영화는 한 때 전 국민을 공분하게 만든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관계가 깊다.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시기에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 영화 밀양(2007)을 찍는 중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영화를 찍는 장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본 이창동 감독은 잠시 밀양 촬영을 중지했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은 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영화 시이다.
시는 국제적으로 큰 관심과 인정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는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에게 인정만을 받았을 뿐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창동 감독 본인이 말하길 '원래 자신은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마케팅으로 쓰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게라도 홍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케팅에도 어려움을 겪은 영화이다. 결과적으로도 개봉 당시 국내 관객은 20만에 그쳤다. 대중적 흥행 요소가 적은 영화라고 해도 안타까운 결과이다.
왜 '시'여야만 했을까
영화를 보다가 이 영화 제목이 왜 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극중 주인공인 미자(윤정희)가 시를 배우고자 한다는 사실은 영화 초반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미자가 시를 배우는 이야기는 중심이 분명히 아니었다. 분명한 중심소재는 자살한 여중생과 그에 관련된 진실이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시는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시를 배우러 문화 센터에 온 사람들 중 미자를 빼고는 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시 낭송회 자리에서도 시는 그저 장난거리 취급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시와 시인이 겪는 고통과 힘듦을 그리는 영화라면 제목이 '시'여도 되겠지만 이 영화에서 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그저 주제를 도와주는 소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시일까.
이 의문은 영화 말미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는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고 연출과 각본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짐작컨데 이창동 감독은 밀양 사건을 보면서 밀양 사건 피해자 뿐만 아니라 모든 피해자들에게 영화 한 편을 바치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피해자에게 각별한 감수성을 보여줄 주인공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리하여 미자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미자와 가해자를 연관짓기 위해서 미자를 가해 학생 중 한 명을 미자의 손자로 설정하였다. 즉, 미자는 피해자에게 감수성을 보이면서 가해자와 너무도 가까운 관계이며 근본적으로 가해자를 버릴 수 없는 인물이다. 미자가 끊임없이 시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미자가 지닌 양심과 감성이 도드라지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미자는 피해자인 아녜스를 위한 시를 한 편 남기고 사라진다. 즉 이 영화 제목 시는 시 일반이 아닌 미자가 남긴 그 시 한 편을 지칭하는 제목이다.
가해자들에게 던지는 물음표
영화 시는 가해자들인 10대 학생들을 미자의 눈으로 관찰한다. 미자가 보기에는 자기 손자를 포함한 가해자 6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토록 잔인한 폭력을 휘둘렀으면서도 차려주는 밥을 잘만 퍼먹고 잠만 잘 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동네 이웃 꼬마들과 웃으면서 어울려 논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요즘 10대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영화에도 이해되지 않는 그 모습들을 그대로 넣었다'고 하였다.
영화 시는 어떤 의견을 내지 않는다. 슬퍼하는 눈으로 가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하는 언행을 늘어놓을 뿐이다. 가해자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인 가해자들을 구해내려고 한다. 그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추가적으로 하는 언행은 '도대체 왜 저러지?'라는 질문을 불러낸다. 학교 관계자들이 하는 언행도 마찬가지이다. '저렇게까지 할 수가 있나?'는 의문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홀로 인간인 미자
영화 시 속에서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미자 뿐이다. 여중생 사망 사고를 처음 목격한 미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묻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여중생이 자신이 키우는 손자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자는 극심한 고통에 빠진다. 여중생이 너무도 불쌍하고 그 여중생을 죽음에 몰아 넣은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해자 중 한 명이 또 미워할 수 없는 손자이다.
미자는 여러 방식으로 손자가 양심을 가졌는지를 시험해본다. 왜 그랬냐고 직접 다그쳐도 보지만 손자는 아무 대답이 없다. 추모 미사 자리에서 몰래 가져온 사망한 여중생 사진을 손자가 밥을 먹는 식탁 위에 두어 보기도 한다. 손자는 사진을 보고 움찔하긴 하지만 이내 별거 아니라는 듯 밥을 먹으며 TV를 본다.
다른 가해자 부모들도 양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식들 때문에 자살한 여중생에게 어떠한 애도나 미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마음 뿐이다. 그들은 결국 피해자 어머니와 합의를 해낸다. 그러고는 기뻐서 술상을 차린다.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미자는 묻는다. '그래서 이 일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이 질문을 통해 미자는 합의가 되었어도 성폭행 사건이기 때문에 누군가 신고를 하면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자만이 여중생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손자가 저지른 잔인한 폭력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어느 날 미자는 여중생이 몸을 던진 그 다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본다. 그 여중생이 마지막으로 봤을 장면을 미자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내려다본다. 비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미자는 일전에 자신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시도했던 자신이 간병하던 중풍 걸린 노인을 찾아간다. 그리고는 그 중풍 걸린 노인과 원치 않는 관계를 맺는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해야 했던 여중생이 겪은 그 고통을 자신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는 듯이.
마지막 결심과 시 한 편
미자는 결국 손자를 경찰에 신고한다. 피해자 어머니와 원만한 합의까지 이루어진 상황에서 사랑하는 손자를 직접 경찰에게 넘기기란 너무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경찰에 손자를 넘긴 미자는 시 한 편을 남기고 본인도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영화는 미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명시적으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 시작 부분에 죽은 여중생이 떠내려왔던 그 강줄기를 미자가 자취를 감춘 그 상황을 그리는 대목에서도 똑같이 보여줄 뿐이다.
미자가 자취를 감추기 직전에 남긴 시가 '아녜스의 노래'이다. 아녜스는 극중 피해자 여중생의 세례명이다. 그리고 그 시가 이 영화 제목이 말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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