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와 정우성. 실제로도 친분이 깊기로 소문난 두 배우가 오랜만에 한 영화에 같이 출연한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이정재가 처음으로 연출(감독)을 맡고 각본을 쓴 영화라는 사실도 관심을 모았다.
그 관심 속에는 우려도 포함된다. 기대를 하는 만큼 실망도 크지 않을까 싶은 요소들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왕년 청춘스타 이정재/정우성이 아닌 배우 이정재/정우성이 어떤 연기력과 호흡을 보여줄지, 배우 이정재가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연출이 너무도 기대 이하는 아닐지 등 우려할 만한 요소도 한둘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본 후에 든 생각은 기대한 부분은 기대한대로 충족이 되었고 우려스러운 부분은 우려스러운대로 드러났구나 였다.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헌트는 볼 만한 영화였다.
이정재와 정우성 두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 두 사람이 쎈 캐릭터를 연기했던 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괜찮지 않았나 싶다. 이정재는 연기만 놓고 보자면 신세계보다도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정우성도 연기나 대사처리 면에서 최근 보여줬던 모습 중 가장 안정감이 보였다. 특히나 정우성은 워낙 비트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그 뒤에 나온 신의 한 수나 감시자들이나 아수라, 더 킹 등 강도와 감정수위가 높은 대사가 많은 영화에서는 늘 어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이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이 컸는데 다행히 헌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헌트를 보면서 배우 정우성은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찍어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본 진행 방식도 흥미로웠다. 영화상 중요한 내용을 폭로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하자면 헌트 각본은 평범하게 시작해서 복잡도를 점점 높여가는 방식을 취했다. 아마 관객들을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루었다. 다만 복잡해지는 관계도를 최대한 대중적으로 보여주려는 탓에 각본상 헛점이나 어울리지 않는 장면,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장면, 해소되지 않은 복선 등이 눈에 띄었다. 높은 복잡도와 높은 대중성을 모두 달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적 친절함을 조금 버리고 치밀함에 더 힘을 썼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헌트는 형식은 스파이 영화이지만 목적은 대중들에게 1980년대 당시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연기나 각본 못지않게, 아니 어찌보면 그 이상으로 현대사 고증과 현대사 알리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영화이니 시나리오는 허구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 안에서 보이는 장면들이나 대사들을 보면 목적이 확실한 영화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분명 앞으로도 영화적으로 다룰 주제들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를 잘못 처리하면 영화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전물이 되어버린다. 형식 자체가 역사 고증인 역사 드라마 영화라면 괜찮겠지만 헌트처럼 스파이 영화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그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헌트가 그 균형점을 괜찮게 찾았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에는 이런 잔악한 일들도 벌어졌다'고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고 영화 각본이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이정재가 감독 데뷔작으로 왜 전두환 시대를 다루었을까?' 배우 이정재는 평소에 딱히 역사관이나 정치관을 내비친 적이 없기에 의외였다. 암살 같은 영화에도 나오기는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이정재와 정치 혹은 현대사와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장사를 위해 자극적인 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고는 볼 수 없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가 군부 독재자를 공격하는 강도는 매우 세다. 표현도 직설적이다. 게다가 헌트는 현대사 취재를 많이 한 영화였다. 이정재 본인 말에 따르면 각본을 4년 동안 수정했다고 한다. 그 4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현대사적 사실들을 공부하고 취재하고 확인하는 과정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감독 이정재는 이 소재를 선택하는 데에 진심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도 그 정성이 느껴진다. 그러니 의문이 든다. 꼭 답을 들어야 하는 의문은 아니다. 나에게는 의문거리일지 몰라도 이정재 본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소재일지도 모르고, 이런 의문은 꼭 풀어야 하는 의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재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는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 보완점은 적지 않게 보이는 영화였다. 영화만 놓고 보면 헌트는 높은 평점을 매기기에는 힘든 영화였다. 볼 만한 영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정재 감독이 연출 할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응원하기에는 충분한 영화였다.
평점: 3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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