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영화 Review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Verdens verste menneske)[2021]

by WritingStudio 2022. 9. 1.
반응형

 

제목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이 영화 원제인 Verdens Verste Menneske에 대해 감독 요아킴 트리에(Joachim Trier)는 한 인터뷰에서 '노르웨이에서 옛날부터 써 온 말로 세상 하잘것없이 보이는 일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를 비웃고 책망하는 뜻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의역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영어 제목인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는 그래도 원제를 많이 존중한 제목인 셈이다.

 

리뷰 시작부터 한국어 번역 제목을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이 영화는 '사랑할 때'만을 강조하는 영화도 아니고 '사랑할 때에만' 일어나는 일만을 그리는 영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제 갓 서른이 된 무언가가 되고 싶은 강한 의지와 욕심을 가진 주인공이 방황을 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주인공은 자기 욕심으로 인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저버린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본인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기반으로 중심을 잡아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결국에는 자신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사랑 때문이 아니다. 끝없는 자기애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늘 마음 가는 대로 길을 선택하고 자신은 무엇인가가 될거라 굳게 믿으며 무엇이든 잘 해 온 주인공은 서른 즈음이 되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어렵게 의대에 진학했다가 의대 공부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심리학과로 옮겼다가, 사진을 찍고 싶다며 서점에서 일을 하며 사진을 배우는 주인공은 늘 거침이 없다. 하지만 서른이 되자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자신은 무언가가 될 것이며 되어야 한다는 욕구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을 할 만한 상대를 만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주저하고 결국에는 남자로부터 떠난다. 지적인 남자를 만날 때에는 자신을 가르치려 든다고 화를 내고 다정다감한 다른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다정다감한 남자에게 '너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게 뭐냐'며 지적인 교양이 없음을 질책한다.

 

주인공은 그렇게 두 남자를 떠나보낸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하여. 그러던 어느 날 그 중 한 남자가 불치병에 걸려 곧 죽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주인공은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 남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진심으로 주인공을 사랑했던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유명한 만화 작가였던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앞두고 담담한 척 하는 일에 진물이 났다면서 '나는 내 작품으로 기억되기도 싫고 너에게 추억으로만 남고 싶지도 않다'며 '그저 내 집에서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자가 남긴 마지막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그녀는 영화 현장 스틸컷 사진 작가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창 밖에 본인이 떠나보낸 다른 남자가 아내와 아기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들 대다수는 태어나서 무언가를 해보려고도 하고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한다. 그 와중에 많은 실수를 하고 본인 욕심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지가 헷갈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이 되어 무언가를 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정도 차이는 나겠지만 우리는 살면서 '난 정말 최악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들을 만난다.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 이 사람 저 사람이 '난 최악이야'라고 스스로를 자책할만한 순간들을 죄다 모아서 던져주었다. 그러니 관객들은 저마다 영화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이 스스로를 최악이라고 자조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원하는 삶을 살려는 마음은 잘못된 마음도 욕을 먹을 마음도 아니다. 그저 결과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스스로를 자책하지만 그 누가 주인공을 마냥 욕을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지나치다 싶은 행동도 하지만 이해는 되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저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러면 안 될텐데' 정도랄까.

 

영화에 대해 이래저래 길게 썼지만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이런 글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를 영화적 느낌으로 전달을 해 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쓴 이 영화에 대한 본 글 내용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여겨도 무방하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무언가는 이런 글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영화라는 표현 방식이 왜 고유한지를 보여준다. 적힌 글을 읽는 것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무언가를 배우가 내뱉는 대사를 통해서 표현해내며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를 표정과 연출을 통해 표현해낸다. 영화가 아니면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표현해 내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실로 훌륭한 영화였다. 특히 각본이 감탄스러운 수준이다. 각본이 훌륭한 영화는 많이 봤지만 이 영화 각본은 또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보이후드그레이트 뷰티 가운데 즈음에 위치하는 느낌이랄까. 솔직하면서도 은밀하고 담백하면서도 깊다. 만나보기 힘든 각본이었고 만나보기 힘든 영화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