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쓴 책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에 바치는 영화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1935년생인 우디 앨런은 헤밍웨이가 1961년에 자살을 했을 때 20대 중반이었다. 독서광인 우디 앨런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헤밍웨이 사후 3년이 지난 1964년에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출간된다. 헤밍웨이가 1920년대에 파리에 살면서 겪은 일들을 담은 책이다. 가만히 읽어나가면 그 시대에 빠져들게 될 만큼 뛰어난 회고록이자 수필이자 팩션(faction)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나오는 풍광들과 인물들과 대사들로 가득하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지 않고 이 영화를 봐도 문제는 없지만 책을 읽고 이 영화를 본다면 얻게 되는 즐거움이 몇 배로 커지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꼭 읽기를 바란다.
줄거리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 곳곳을 촬영한 장면들로 시작한다. 시점은 2010년이지만 1920년대가 남긴 흔적들도 아직 여전하다. 이 파리에 주인공 부부가 휴가를 온다. 남편인 길(Gil)은 낭만주의자이다. 아내인 이네즈(Inez)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길은 잘 나가는 상업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상업적인 작업에 염증을 느끼고 현재는 소설을 쓴다. 이네즈는 전형적인 유명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싶어하지만 길은 그저 파리를 느끼고 싶어한다. 길은 혼자서 파리를 좀 걷다 오겠다고 말하고 산책을 나선다. 밤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1920년대 풍의 자동차 한 대가 길에게 다가오더니 파티에 같이 가자며 그를 태운다.
길의 눈 앞에 1920년대 파리가 펼쳐진다. 콜 포터(Cole Porter)가 피아노를 치며 'Let's Do It' 을 부르고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erald)와 젤다(Zelda) 피츠제럴드가 말을 건다. 피츠제럴드 부부를 따라가니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보인다. 길은 헤밍웨이와 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길은 헤밍웨이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읽어주기를 청하고 헤밍웨이는 본인 대신 저명한 비평가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에게 길이 쓴 소설을 전해주겠다고 한다. 길은 뛸듯이 기뻐하며 다음 날 소설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한다.
다음 날에도 밤 12시가 되자 또다시 1920년대 파리가 펼쳐진다. 길이 직접 쓴 소설을 들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으로 찾아가니 거트루드 스타인과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한창 그림에 대해 논쟁중이다. 길은 그곳에서 피카소의 뮤즈인 아드리아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같이 다니면서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길과 아드리아나는 1920년대를 넘어서 1890년대로 이동하게 된다. 1890년대는 지금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는 엄청난 문화 예술적 번영기이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폴 고갱(Paul Gauguin),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등과 그 외에도 벨 에포크를 수놓은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만난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황홀감에 빠지지만 정작 그 유명인사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그리워하며 1890년대는 상상력을 상실한 시대하며 개탄한다.
1890년대에 푹 빠진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1890년대에 머물러 살자고 청한다. 하지만 길은 벨 에포크 시대를 상상력을 상실한 시대라고 개탄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고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행위는 끝이 없음을 깨닫는다. 길은 아드리아나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2010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은 이네즈와 결코 행복하게 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이네즈와도 헤어진다. 현재를 살기로 선택한 길은 파리에서 자신의 감수성과 어울리는 인연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 대해서
우디 앨런은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다 본인의 지적 상상력을 더하여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이 감독한 다른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보다 더 대중적이고 보다 더 즐겁고 유쾌하다. 그래서인지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가 우디 앨런 영화 중 가장 성공한 이유는 이 영화를 행복하게 찍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여럿 봤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행복감이 느껴지는 영화는 없었다. 엄청난 독서광에 수많은 지식을 갖춘 우디 앨런 감독이 이 영화에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인물 묘사만 봐도 그렇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유명 인물들이 나온다.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거트루드 스타인, 콜 포터, 파블로 피카소, 만 레이(Man Ray), 루이스 브루넬(Luis Buñuel), T.S 엘리엇(Elliot),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폴 고갱, 에드가 드가 등 그야말로 수많은 별들이 출연한다(그래서 반 고흐의 <스타리 나잇>을 이 영화 포스터의 배경으로 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인물들 하나하나를 정성껏 묘사했다. 의상, 분장, 헤어스타일부터 그들이 내뱉는 대사들까지 모두 다 너무도 섬세하고 완성도가 높다. 우디 앨런에게 이 영화는 그가 감독한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행복하게 작업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헤밍웨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헤밍웨이가 자신을 소개하는 그 장면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헤밍웨이가 글쓰기에 대하여 말을 하는데 그 내용 역시도 헤밍웨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썼던 내용들이다. 글쓰기에서 진실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헤밍웨이의 작가정신도 아주 잘 표현되었다.
캐스팅도 화려하여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레이첼 맥아담스(Rachel McAdams), 마리옹 꼬뛰아르(Marion Cotillard), 톰 히들스튼(Tom Hiddleston), 애드리안 브로디(Adrien Brody) 등 익숙한 얼굴들이 역사적 유명인사들을 연기하는 모습은 영화적 즐거움을 더해준다. 카를라 부르니(Carla Bruni)를 캐스팅 한 점도 재밌다. 카를라 부르니는 이탈리아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의 아내이자 가수이다.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한 2011년에는 사르코치가 대통령이던 시절이다. 이탈리아 대통령 영부인을 캐스팅한 것이다. 그것도 화려한 역할이 아닌 끌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정원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역시도 소소한 즐길거리였다.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존경하는 예술가들이 살았던 시대를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 쯤은 하게 된다. 그래서 <미드나잇 인 파리>와 같은 영화는 찍기가 매우 어려운 영화다.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의 환상을 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만들었다가는 기라성같은 예술가들의 팬들이 감독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드나잇 인 파리>는 훌륭한 영화이다. 환상을 깨는 영화가 아닌 환상에 빠지게 만들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도 여러번 봤지만 그 후에도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는 영화인데도 볼 때마다 새롭다.
앞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꼭 읽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아야 한다.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세상에서 환상적인 여행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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