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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영화다각형 6]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 The Greate Beauty) (2013)

by WritingStudio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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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봉년도: 2013
국내 개봉년도: 2014

<그레이트 뷰티>는 2014년에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lm)을 받았다. 요즘 같았으면 거의 모든 부문에 후보로 올랐겠지만 당시 아카데미는 봉준호 감독 말대로 '미국 지역 축제'였기 때문에 이 영화는 외국어영화상 하나만을 수상했을 뿐 그 외 부문에서는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사건을 떠올려보면 2014년이 가깝고도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Jep Gambardella)는 이제 65세다. 그는 20대에 쓴 책 한 권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로마 상류사회로 진입한 후 특유의 재치와 신사다움으로 로마 상류사회의 중심부에 선다. 하지만 20대에 쓴 책 한 권 외에는 65세가 되도록 책을 쓰지 않는 중이다. 글을 쓰는 활동은 하이 컬쳐 매거진에서 인터뷰를 담당하는 정도이다. 젭은 대부분의 시간을 상류사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보낸다. 시끌벅적하게 파티를 벌이기도 하고 모여앉아 토론을 하기도 한다. 시덥잖은 농담도 주고받는다. 영화에서 이따금씩 어떤 인물들이 젭에게 '왜 책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다.

젭은 늘 관찰을 한다. 상류 사회 사람들과 파티를 열고 즐기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어딘가 늘 허전함을 느낀다. 그 허전함 때문에 젭은 책을 쓰지 못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한 남자가 갑작스레 찾아온다. 젭의 첫사랑의 남편이었다. 그는 젭의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이야기를 굳이 젭에게 와서 하는 이유는 젭의 첫사랑이 남긴 일기장 때문이었다. 그 일기장에는 온통 젭에 관한 이야기 뿐이며 남편은 그저 좋은 동반자라 적혔다. 일기장 내용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젭에게 와 그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그 이후로 젭은 과거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젊은 시절에 놀던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젭은 친구인 로마노에게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고 말한다. 로마노가 기뻐하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말하자 젭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다. 왜 그걸 묻느냐'고 반문한다. 젭도 무엇이 자신이 다시 글을 쓰려는 마음을 먹게끔 만들었는지 확실히 모른다.

젭의 상류 사교계 활동은 계속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져보이고 부족한 것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사람들이요, 삶들이지만 결국 모두 진짜가 아니다. 젭은 자신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 도중 쉬면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에게 '다들 걱정 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이 모든게 헛되다'는 말을 한다.

로마 밤거리를 거닐던 젭은 마술 쇼 리허설장에 선 기린 한 마리를 본다. 젭의 친구인 마술사가 인사를 건네자 젭은 '저 기린은 무어냐?'고 묻고 마술사는 '내일 저 기린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을 선보이기로 되어있어서 리허설 중'이라고 말한다. 젭은 '저 기린을 사라지게 할 수 있냐'고 재차 묻고는 지친 표정으로 '그럼 나도 좀 사라지게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마술사는 '내가 사람을 사라지게 할 줄 알면 이 나이 먹도록 이 서커스 짓을 하고 살겠냐?'고 반문하고는 '친구여, 다 눈속임일 뿐이야. 눈속임일 뿐이라고(영어 자막: "it is just a trick")'라 말한다.

마술사 친구의 말을 곱씹던 젭에게 친구 로마노가 슬픈 얼굴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자신은 로마를 떠날거라 말한다. 이유를 묻는 젭에게 로마노는 '로마에서 40년을 찾았지만 작별 인사를 건넬만한 친구는 젭 자네 하나 뿐'이라며 '로마는 나를 너무 실망시켰다'고 말한다. 로마 상류사회에서 느낀 껍데기뿐인 관계와 위선적인 모습에 지칠대로 지친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로 '성녀'라 불리는 수녀가 찾아온다. 성녀는 젭에게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다. 성녀의 진정어린 질문에 젭은 그 이유에 대해 처음으로 대답을 한다. 젭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찾고 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말에 성녀는 엉뚱하게 '내가 왜 뿌리만 먹고 사는지 아느냐'고 묻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젭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자 성녀는 '왜냐하면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남기고는 신비한 현상을 보여준다. 젭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성녀는 성화로 이어지는 고난의 계단을 오르고 젭은 배를 타고 고향인 나폴리로 향한다. 즉 각자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젭은 나폴리로 가면서 자신 마음 속 깊숙히 자리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새로 쓰게 될 소설 첫 구절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마술사 친구가 했던 '이것은 모두 눈속임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레이트 뷰티>는 '의미'로 넘치는 영화이다. 유럽 영화답게 '의미'를 곳곳에 설치하고 관객의 이해와 해석을 요구한다. <그레이트 뷰티>는 시작부터 로마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진지하게 담는다. <그레이트 뷰티>의 촬영 방식이 지닌 특징은 '관찰'이다. 젭의 시선 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 자체가 관찰을 하는 듯한 시선이다. 그래서 관객들도 '그레이트 뷰티'를 찾는 젭처럼 관객들도 계속하여 무언가를 관찰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동시에 <그레이트 뷰티>에는 음악적 세련됨이 넘치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펼쳐지는 영상 하나하나가 세심하고 세련되다. 음악도 아주 세심하게 골랐다. <그레이트 뷰티>를 보고 나오면 영화에서 들은 음악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음악들은 대부분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으로 이루어진다. 파티 장면에서 쓰이는 음악도 그저 신나기만 한 음악이 아니다. 세심한 선곡이며 작곡이다. 영화의 시작을 데이비드 랭(David Lang)의 'I Lie'로 시작한것도 절묘하고 젭이 정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수녀를 관찰하는 장면에서 삽입한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의 'My Heart's in the Highlands'도 장면의 섬세함을 제대로 폭발시킨다. 레이첼스(Rachel's)의 'Water from the Same Source'도 영화와 더없이 어울린다.

주인공 젭은 의미를 찾아다니는 세련된 사람의 상징이다. 하지만 다른 상류 사회 사람들과 젭은 다르다.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주인공인 토니 세르빌로(Toni Servillo)의 연기력이다. 세르빌로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인 '젭'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연기해낸다. 그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자칫 의미들 때문에 어지럽다가 흩어져버릴 수도 있었다. 세르빌로는 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그야말로 훌륭한 연기를 선사한다.

<그레이트 뷰티>는 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éline)이 쓴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이 여행에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며 그 상상력은 그저 눈을 감음으로서 발현된다는 내용의 이 구절은 영화의 핵심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처음에는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 뜻이 분명하게 다가오는 인용구이다.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는 이러하다. 태어난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살게 되어있다. 그렇게 보면 삶은 하나의 여행이다. 수많은 무언가들이 삶을 이루기도 하고 삶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뿌리'이다. 나머지는 그저 모두 상상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러니 결국 삶은 어떻게 상상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영화도 영화 수준에 비해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대중영화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 배급사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이지만 너무도 비대중적임을 걱정했는지 영화를 홍보할 때 이 영화에 'La Colita' 음악과 춤이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SNS에도 'La Colita가 나오다니!'식의 후기가 많았다(난 우리나라에서 'La Colita'가 유명한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과 힘은 다른 부분들에 스며있다. 그 매력들을 느끼게 되면 'La Colita'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영화 애호가라면 바로 찾아보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사람의 내면을 바꾸어내는 힘을 가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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