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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파리, 13구(Les Olympiades, Paris 13e)[2021] -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보여주는 보다 현실에 가까운 파리

by WritingStudio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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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HATCHA

파리라는 제목이 관심을 끌었다. 판데믹 상황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디로도 나가지 못하는 시점에 파리, 13구라는 제목은 매력적이었다. 제목과 더불어 흑백 포스터에도 끌렸다. 파리 13구역은 파리 중심부에서 많이 벗어난 곳이다. 영화에 흔하게 나오는 파리와는 지역 자체가 다르다. 흑백 포스터라도 백인과 아시아인과 흑인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분명 의도적인 캐스팅이었다. 파리라는 제목, 흑백 포스터, 감각적인 느낌 등에 이끌려 예매를 했다.

 

이 영화는 원래 제목이 Les Olympiades, Paris 13e이다. Les Olympiades는 파리 13구역에 위치한 커다란 주거 건물이다. 그러니 이 영화 제목은 매우 구체적인 주소인 셈이다. 당연스럽게도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활동하는 주된 공간이기도 하다.

Les Olympiades 건물 사진. 출처: wikipedia

영화는 Les Olympiades 건물 앞에 지어진 물결치는 지붕이 인상적인 상가 건물을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물결 모양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면서 카메라 시선이 점점 주인공 격인 Les Olympiades로 옮겨간다. 화면은 흑백이지만 음악은 매우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흑백 화면과 다소 강하고 거친 일렉트릭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영화는 시작부터 '나는 파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과거가 아닌 현재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감독한 자크 오디아르(Jacques Audiard)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 중심부, 즉 1구역 및 그 주변이 아름다운 곳이고 파리를 대표하는 구역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곳은 워낙 역사적인 유물들로 가득 찼다보니 구역 자체가 박물관같은 느낌이 들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현재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고. 오디아르 감독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찍고 싶었고 본인이 실제로 오랫동안 거주하기도 했던 파리 13구를 중심 소재로 삼았다고 했다.

 

오디아르 감독이 한 말대로 영화에 담긴 파리 13구는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Les Olympiades는 1970년대에 지어진 오래 된 건물이다. 외관은 꾸준한 관리를 받아 50살에 가까운 느낌은 아니지만 내부는 매우 낡았다. 우리가 '파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와는 일단 멀다.

 

파리, 13구도 우리가 파리를 상상할 때 떠올리는 단어인 '로맨스' 하나는 공유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 영화이다. 다만 그 색깔이 통상 생각하는 로맨스와는 다를 뿐이다. 다분히 성장영화적인 면도 담겼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로맨스나 성장스토리는 흔하지 않다. 이 영화에 나오는 성장 스토리는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겪는 성장 스토리다. 그러니 예쁘거나 귀엽거나 순수하거나 하지는 않다. 다들 알 만큼 산 사람들이라 이미 삶으로부터 받은 아픔 때문에 정서가 정상 범위에서 꽤나 벗어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실수를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 또 상처를 받으면서 자신을 점점 알아간다.

 

이 영화는 스토리와 시나리오 외에도 촬영과 음악이 상당히 독특하고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흑백 영화지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화면은 칼라로 표현했다. 흑백이라는 포맷을 택하기는 했지만 시대성을 깨뜨려가면서까지 흑백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현대적인 파리, 여러 인종이 등장하는 파리 변두리를 흑백으로 찍고자 했을 때 세운 목적을 지키면서도 흑백과는 시대적으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장면은 현대적인 것 그대로 두었다. 고집스럽게 모든 장면을 흑백으로 촬영했다면 시대적 균형이 심하게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대적 균형을 맞추는 데에 음악 역시 큰 몫을 했다. 이 흑백 영화에서 감각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묻어나는 데에는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Rone이라는 전자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음악을 담당했는데, 찾아보니 나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오랜 경력을 지닌 뮤지션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사운드는 이 영화를 한 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파리 1구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다.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노라(Nora)는 늦깎이 대학생으로, 늦은 나이에 파리 명문대에 입학한다. 노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보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우연(악연이었으나 후에 인연이 된다)으로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된다. 정황상 말도 안 되는 오해임이 분명함에도 학생들은 노라를 엄청나게 괴롭힌다. 이로 인해 노라는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파리 명문대라고 하면 떠올리는 매너 넘치는 모습과 지적인 행동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파리, 13구는 뜨겁고, 솔직하고, 현실적이며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영화이다. 성인이 된지 좀 지난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성인이 된다고 해서 자아가 저절로 찾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이상이 서로 점점 더 멀어지며, 그동안 세월 속에서 생기고 쌓인 여러 마음들이 복잡하게 섞이면서 서로 밀쳐내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면서 보다 더 혼란스러워진다. 자아는 찾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인 삶은 유지해야 하니 내적 모순과 갈등은 더 커진다. 이는 일에서도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파리, 13구에 나오는 인물들도 그렇다. 그들은 인생에 끌려가면서도 마음은 솔직하게 표출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려 한다. 그러면서 심적으로 힘든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을 통해 어딘가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어딘가가 종착점이라는 보장은 없다.

 

평점: 3.5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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