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노비스(The Novice). '신참'이라는 뜻이다. 예매를 결정하기 전에 영화 정보를 좀 찾아봤다. 조정(rowing)이라는 독특한 소재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조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관람하기가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로렌 해더웨이(Lauren Hadaway)라는 감독도 생소했다. 알고보니 이 영화가 감독 데뷔작이었다. 영화 포스터가 매우 거칠었다. 위플래시(whiplash) 느낌이 나기도 했다. 해더웨이 감독은 이 영화를 감독하기 전까지 영화 사운드 부문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음향 전문가였고 실제로 영화 위플래시에서 사운드 편집 일을 했다. 아마 이 영화를 감독하게 된 데에는 위플래시가 끼친 영향도 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하고 치열했다. 한 시간 반 동안 평화로운 장면이라고는 채 2분도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실했다. 집착과 광기였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조정을 선택한 이유는 감독 본인이 과거에 조정을 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니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조정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신체조건을 뛰어넘는 기록을 찍기는 극히 힘들며 동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본인 실력에 상관없이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하는 정치적인 요소도 무시 못하는 종목이 바로 조정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알렉스(이사벨 퍼만)는 조정에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인다. 체육 장학금이 필요하지도 않고 조정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알렉스는 조정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물론 알렉스는 무엇에든 집착하며 무엇을 하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인물이다. 자신은 '노력파'라고 알렉스는 스스로 강조한다. 그런 알렉스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알렉스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조정 때문에 전공 성적도 부진하다. 알렉스가 조정에 미친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곳에서 라이벌을 찾았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라이벌을 이기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정신병적 집착증을 지녔다. 그로 인해 인간 관계가 망가져도, 몸이 엉망이 되어도, 전공 성적이 나아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눈에 보이는 라이벌을 이기는 것만이 알렉스에게는 전부다. 알렉스는 '적당히 하라'는 말에는 경기를 일으킨다. 알렉스는 누군가를 이기기로 한 분야에서는 '적당히'라는 말을 이해 자체를 못 한다. 자신에게 '적당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알렉스는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보인다.
극중 알렉스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에 알렉스가 시험 문제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다 풀고도 제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검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상은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그런데도 시험 결과는 별로 좋지 않다. 즉 알렉스에게 타고난 재능은 없다. 알렉스가 타고난 재능은 '집착과 노력'이었다. 영화 내용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런 노력이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내용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것은 지나친 광기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 주변 인물들도 혼란스러워한다. 알렉스가 워낙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알렉스를 누군가는 미워하고 누군가는 도와주기도 한다. 알렉스에게는 그 모든 사람들도 아무런 필요가 없다. 알렉스에게는 조정 팀내 포지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목표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더 노비스 영화 포스터에는 "조정에 관한 <위플래쉬>"라는 홍보 문구가 적혔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위플래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광기'하나만이 공통점이다. 위플래쉬에서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 학교에 들어갔고 본인이 전공하는 분야에서 포지션을 따내기 위해 광기를 보인다. 즉, 이미 음악에 인생을 건 인물이 음악에 미친 경우이다. 플레쳐 교수(J.K.시몬스)도 방식이 옮고 그름을 떠나 본인이 지휘하는 밴드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앤드류를 극도로 자극하여 수준 높은 연주를 하게끔 만들고자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더 노비스 주인공 알렉스는 앤드류보다는 플레쳐 교수를 닮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조정이 전공도 아니고 진로를 조정으로 잡지도 않았다. 플레쳐 교수는 일생을 밴드 지휘에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 노비스와 위플래쉬는 서로 상당히 다르다.
이 차이점은 결말에 이르러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결말에서 알렉스가 보이는 행동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노비스가 결말에서 보여주는 바는 자못 명확했다. 병적으로 집착한 목표를 이루고 나서는 내던져 버리는 것. 왜냐하면 알렉스에게는 이기고 싶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더 노비스 결말이 알렉스가 무언가를 깨달았음을 암시한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 영화가 표현해 낸 알렉스 내면 속 광기가 너무 깊고도 병적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이 영화는 상당히 무서운 영화였다. 그렇기에 영화로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영화였다.
해더웨이 감독이 음향 쪽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지만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촬영이었다. 우선 색감이 아주 잘 잡혔다고 생각했다. 일상적 장면이든 조정 연습 장면이든 시합 장면이든 연애 장면이든 모든 장면이 색감이 차갑다. 화면 질감도 부드럽고 화사하기보다는 거칠고 찢어질 듯하다. 마치 장면들이 계속하여 땀을 흘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에서 유려하다거나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은 노(row)를 촬영한 장면 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집착'과 '노력'이라는 주제와 어우러져서 치열한 느낌이 들었다.
더 노비스는 주인공이 지닌 라이벌 꺾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최대한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서 표현해낸 영화였다. 이 집착에는 이유가 없다. 상대를 이기는 것 그 자체만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주인공이 보여주는 광기와 집착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광기 자체가 온전하게 그대로 다가온다. 이는 꽤나 날카롭고 무서운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면에서 더 노비스는 상당히 독특하고 드문 영화이며 그런 면에서 영화적으로 기여한 바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평점: 3.5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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