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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우연과 상상(偶然と想像) [2021] - 일상 속 우연과 색다른 상상

by WritingStudio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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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왓챠피디아

평점 : 4 / 5

국내판 포스터에는 '아카데미 수상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신작'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2021)보다 먼저 개봉했던 영화이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늦게 했을 뿐이다. 또한 2021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우연과 상상드라이브 마이 카가 모두 상영되었다.

영화 우연과 상상(2021) 안에는 단편 영화 세 편이 들었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魔法(よりもっと不確か)), 문은 열어둔 채로(扉は開けたままで), 다시 한 번 더(もう一度).

이 단편 영화 셋은 서로 내용상 연관은 없다. 다만 착상 방식이 같다. 세 편 모두 문득 떠오른, 혹은 실제로 보았던 우연을 시작으로 상상을 펼치는 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 감독이 본인이 지닌 이야기 능력을 마음껏 펼친 영화이다. 영화에는 사후적으로 플롯을 재배치한 흔적이 없다. 중심이 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뽑아 낸 이야기가 그대로 스토리이자 플롯인 영화이다. 대사도 상업영화스러운 면이 적다. 촬영 날 즉흥적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은 대사들도 많았다. 결은 많이 다르지만 일본 감독이 찍은 홍상수 감독 식 영화를 보는 것 같아 묘하게 흥미롭기도 했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魔法(よりもっと不確か)) : 연애

첫 단편은 연애관계가 주제이다. 우연한 사건은 택시 안에서 일어난다. 츠쿠미는 절친 메이코에게 최근에 마음이 생긴 남성인 카자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카자키의 전 여자친구가 바로 메이코였다. 이 우연적인 삼각 관계를 시작으로 류스케 감독은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제가 다소 클리셰적인만큼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이 첫 단편의 감상 포인트는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 속에서 드러나는 특이성과 일상성, 그리고 류스케 감독의 섬세함이다. 단편 속에서 움직이는 세 인물들의 행동과 말은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기억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기가 찰만한 대사도 나오고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대사도 나온다. 메이코과 카자키가 신랄한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이 진행되는 도중에 영화를 보던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이 장면이 저 사람에게 견딜 수 없는 감정을 촉발시킨걸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문은 열어둔 채로(扉は開けたままで) : 복수

아나운서 지망생이던 사사키. 그는 졸업 전 취업에도 성공했지만 완강한 원칙주의자 교수 세가와 때문에 졸업을 못한 채 유급생으로 남게 되고 그에 따라 아나운서라는 꿈도 잃게 된다. 그는 섹스 파트너 관계인 연상의 유부녀 나오와 TV를 보던 중 자신을 유급시킨 세가와 교수가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본다. 그리고 우연히도 늦깎이 대학생인 나오는 세가와 교수의 수업을 들은 경험이 있다. 세가와 교수에게 앙심을 품은 사사키는 성적인 매력을 지닌 나오로 세가와 교수에게 미인계를 써 세가와 교수를 곤경에 처하게 할 흉계를 세운다. 세가와 교수에게 악감정이 없는 나오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사사키는 나오가 성적 유혹에 약하다는 점을 약점삼아 나오를 설득하고 나오는 마지못해 사사키가 세운 음모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교수실 문을 활짝 열어두는 세가와 교수이기에 유혹은 실패하게 되고 세가와 교수에게 감복한 나오는 오히려 모든 계획을 털어놓는다. 사건은 그렇게 정리되는듯 싶었지만 나오의 실수로 나오의 결혼생활과 세가와 교수의 교수 생활이 파탄나게 된다.

5년 후,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던 나오는 이 모든 일의 원흉 격인 사사키를 버스에서 만난다. 나오는 사사키를 경멸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사키는 고집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자신이 곧 결혼을 한다는 얘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오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사사키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키스까지 한다. 나오가 버스에서 내린 후 사사키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 단편에는 두 가지 복수가 들었다. 첫 번째는 사사키가 세가와 교수에게 행하는 복수. 그리고 두 번째는 나오가 사사키에게 하는 복수이다. 나오가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이 단편은 끝이 나지만 나오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사키 역시 성적 유혹에 약하다는걸 아는 나오는 사사키의 마음을 흔들어 그의 결혼 및 사회생활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이다.

이 단편을 통해 드러나는 류스케 감독의 상상은 꽤나 묘하다. 문이 활짝 열린 교수실에서 성적으로 적나라한 대목을 읽어내려가는 장면은 '일본스럽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왜 그런 대목을 썼는지를 묻는 나오의 말에 솔직하고도 작가적으로 답하는 세가와 교수의 대사 또한 인상적이다. 일본 영화가 아니고서는 형성될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류스케 감독의 다소 솔직한 상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한 번 더(もう一度) : 추억

이 단편의 중심이 되는 우연은 매우 우연적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아주 없는 일도 아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잘못 본 상황. 이 상황에서 주인공 둘은 서로에게 서로가 착각한 인물에 대해, 즉 실제로 그리워하던 인물에 대해 묘사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서 그 사람이 되어주는 연기까지 해 준다. 현재 삶에서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그 둘은 서로의 추억을 생생하게 꺼내고 증폭시켜줌을 통해 서로에게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내가 누굴까, 를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떠올리게 되며 옛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학창 시절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있으며 그 당시에 본인이 그렸던 미래의 자신의 모습과 실제 모습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어쨌든 추억은 그 힘이 강하다. 그리고 그 추억을 증폭시키는건 그 시절을 같이 보냈던 사람과의 실제 만남이다.

깊고 솔직한 상상 속에서 스치듯 보이는 삶의 모습

우연과 상상은 류스케 감독이 매우 자유롭게 상상하며 만들어낸 영화이다. 물론 아무렇게나 상상하여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 상상은 깊고 진지하고 조심스러우며 솔직하다. 솔직하지만 흔하지는 않다. 우리는 영화 혹은 이야기에서 흔함을 찾지 않는다. 보통은 우리가 내면에 이미 지녔으나 잊고 지냈던 것, 혹은 삶이나 세상에서 이제는 사라져버렸다고 여기는 것들을 찾는다. 좋은 이야기들은 그러한 것들을 독자나 관객에게 정성껏 펼쳐내며 우리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게 된다. 우연과 상상은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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