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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by WritingStudio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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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Db

평점: 3 / 5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영화 제목만 보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를 연구한다든지 멀티버스를 만든다든지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아니다. 원래 제목을 한 번 보자.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미쳐 돌아가는 멀티버스 속 닥터 스트레인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영화 제목이기에 '대혼돈'이라는 젊잖은 단어를 썼지만 이 영화 제목상 'madness'는 '미쳐 돌아가는' 이라는 뉘앙스에 더 들어맞는다. 대혼돈(chaos)와 광란(madness)의 어감 차이는 분명하다. 대혼돈은 인간의 감정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광란(madness)는 인간적인 감정까지를 포함한 단어이다. 영화 마케팅적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글 제목을 지어보자면 '닥터 스트레인지를 삼킨 광란의 멀티버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꿈이 아니었다. 그는 멀티버스 중 하나를 꿈으로 본 것이었다. 이는 그가 꿈에서 본 소녀인 아메리카 차베즈(America Chavez)를 현실에서 만나면서 밝혀진다. 아메리카는 멀티버스 속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보유한 소녀이다. 아메리카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꿈에서 본 닥터 스트레인지는 본인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닥터 스트레인지임을 알려주며 이에 대한 증거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증거물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이다.

아메리카는 쫓기는 중이다. 이유는 누군가가 그녀의 능력을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능력을 빼앗기면 그녀는 죽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단순히 아메리카를 구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 소녀가 가진 능력이 엄청나게 위험함을 인지하고는 그녀를 보호하기로 한다. 다소 엉성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아메리카를 위협하는 인물이 다름아닌 완다임이 드러난다. 비전을 잃은 후 완다는 극심한 슬픔 속에서 살았는데, 다크홀드(Darkhold)의 힘을 빌어 멀티버스를 살펴본 완다는 멀티버스 속 한 세계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또다른 완다를 본다. 완다는 다크홀드로부터 얻은 힘을 사용하여 꿈에서 그 세계를 볼 수도 있고 '드림워크'를 통해 다른 세계에 사는 완다를 조종할 수도 있지만 본인이 직접 다른 세계로 이동하지는 못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멀티버스 속에서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는 능력을 갖춘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되었고, 아메리카의 능력을 빼앗아 다른 세계로 가서 두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삶을 살려는 목표를 세운다.

영화의 중심 주제는 '멀티버스'가 아닌 '완다의 어긋난 욕심'


그러니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라인은 '완다의 어긋난 욕심과 이를 막는 닥터 스트레인지'이다. 그리고 멀티버스는 이 스토리라인상의 동선에 해당할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중심 주제를 강조하는 영화가 아닌 그 동선을 강조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이에 대해서는 매우 솔직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만큼은 스토리보다는 화면에 관심과 기대가 훨씬 컸다. 즉, 이 영화는 캐릭터와 그들의 동선을 감상하는 영화이다.

이는 실로 감상할만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스칼렛 위치(Scarlet Witch)로 변한 완다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인 위기의 상황에서 아메리카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 속으로 빠진 뒤 거치게 되는 여러 형태의 다양한 세계를 묘사한 장면이었다. 워낙 빠른 시간 속에서 여러 세계가 지나가기에 각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 하나하나는 짧지만, 그 짧은 장면들 하나하나에 매우 큰 공과 제작비를 들인 티가 역력하게 났다. 비교적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래, 이 영화는 이거 보려고 온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커전(incursion)으로 인해 여러 세계가 중첩되어 원래 현실 자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혼란만이 자리잡은 세계를 묘사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매우 섬세했을 뿐만아니라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선 외에 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성공했다고 느낀 부분은 막바지 장면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메리카를 구하기 위해 영화 초반에 나온 증거물을 조종하여 드림워킹을 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좀비 스트레인저'라 부를만한 이 인물(?)은 예고편에도 등장해서 궁금증을 자아냈었는데, 예고편에서는 스트레인지가 흑화되거나 좀비화되는건가싶은 이미지를 주었지만 정작 영화를 보니 기술과 유머가 뒤섞인 그런 소재였다.

이 영화를 멀티버스의 개념을 설명하는 영화로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인터스텔라(2014)를 블랙홀과 시간관념을 설명하는 영화로 보는 것과 같은 큰 오해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이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한 소재이듯, 이 영화에서 멀티버스는 행복에 대한 잘못된 집착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완다와 이를 막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 사용되는 중요 소재일 뿐이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 스토리라인과 각본


다만 그 중심 스토리라인의 수준도 꽤나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스토리에 큰 신경을 쓰는 영화가 아니라는 공론이 이미 깔린 영화임을 감안해도 스토리라인 전개나 각본은 부족함이 많이 보였다. 완다의 흑화 과정도 급작스러우며 뉘우치는 장면도 수용 가능과 수용 불가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정도였다. 아메리카가 각성하는 과정도 보기에 약간 민망했다. 또한 미지의 영역인 멀티버스를 남용하는 듯한 느낌도 다소 받았다. 그렇기에 영화적으로 좋은 평점을 주기에는 어려웠다.

객관적으로도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는 분위기 속에서 개봉했다면 이와 같은 관심까지는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평가도 보다 박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이토록 관심을 끌고 예매만으로 100만을 돌파한 데에는 그간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엔터테이닝 요소가 큰 초고예산 영화들의 가뭄이 너무나 극심했다는 사실도 한 몫 했다고 본다.

보는 재미와 타이밍이 살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개봉 타이밍을 잘 잡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그리고 쿠키영상을 통해- 마블은 앞으로 멀티버스를 미래의 캐시카우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활용에 대한 자유도가 매우 높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시각 효과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삼는 한 영상 수준에 대한 기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토리라인과 각본의 허술한 정도에 있어서도 분명 허용 가능한 선이 존재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개봉 타이밍과 다른 재미요소들이 그 부족분을 보충해주었지만 이러한 허용은 많아야 한두번이다. 영화는 소리와 화면으로 전하는 이야기이다. 소리와 화면만으로도 관객들을 혹하게 만들 수 있지만 어쨌든 영화도 결국 이야기이다. 앞으로 나올 마블 영화에서 이야기가 소외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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