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년도: 2019
한국 개봉년도: 2021
감독: 리조 조세 펠리세리(Lijo Jose Pellissery)
영화를 그래도 1,200편 넘게 보다보니 웬만큼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새로움까지 느끼는 경우는 흔치 않아졌다. 그래서 새로움을 주는 영화가 더욱 귀하고 반갑다. <잘리카투(Jallikattu)> 덕분에 오랜만에 '와, 이건 새롭다'고 느꼈다.
이 영화가 새로운 이유는 인도 영화여서만은 아니다. 한때에는 인도 영화면 새롭다고 느끼기도 했으나 옛날 얘기다. '발리우드'라 불리는 인도 영화계는 이제 세계적이다. '인도 영화'라는 수식어 자체는 이제 새로움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새로운 이유는 영화 자체가 지닌 표현 방법과 연출 때문이다.
시놉시스는 단순하다. 도축자가 실수하는 바람에 물소 한 마리가 도망을 간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화가 날대로 난 물소는 엄청난 에너지로 마을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물소를 잡으러 간다. 이 단순한 시놉시스를 가지고 펠리세리 감독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글 실력이 엄청나게 빼어난 소설가처럼 펠리세리 감독은 영상을 기가막히게 써내려간다.
물소는 가게, 성당, 농지를 가릴 것 없이 뛰어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짓밟는다. 물소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물소를 쫓는 사람 수도 늘어난다. 경찰도 무능력하고 지방 행정관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옆 마을에서 놀러 온 소위 '길거리 양아치'들도 물소 잡기에 동참하고 절도죄로 마을에서 쫓겨났던 총잡이도 다시 불려온다. 한 마디로 난장판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물소를 쫓는 그 모습이 가관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수십명이 물소를 쫓지만 정작 물소를 만나면 제압하지 못하고 되려 다시 도망가기에 바쁘다. 그래놓고는 서로를 탓하며 싸운다. 그러다가 또 무리지어서 물소를 쫓고, 물소를 찾으면 다시 도망다닌다. 이런 혼란 와중에도 개인적인 원한관계에 놓인 사람을은 만나기만 하면 죽기살기로 싸운다. 물소가 제풀에 실수하여 어딘가에 갇히면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자기가 물소를 가두었다며 의기양양해한다. 그러다 또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물소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물소는 다시 날뛰고 사람들은 다시 도망다닌다. 영화 속 인물들은 웃음기 없이 진지하지만 그 행동을 전부 관찰하는 영화 관람자 입장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든 상황이다.
물소를 쫓는 사람 수는 점점 더 늘어난다. 이제 수백명 수준이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물소를 잡아서 평화를 되찾겠다는 마음도 점차 광기로 바뀐다. 이제 그들은 맹목적이다. 마치 물소가 인생의 목표점이라도 되는 듯 미친듯이 물소를 쫓는다.
제 아무리 에너지가 넘치는 물소라고 해도 광기 어린 사람들이 던져댄 돌과 목창에 상처를 많이 입었기에 물소는 결국 넓은 진흙밭에 쓰러진다. 역시나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자기가 물소를 잡았다고 주장한다. 그 뒤이어 달려온 '양아치들'은 자기들이 사람이 더 많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물소를 가로채려 한다. 물소를 가지고 다투는 그들 뒤로 광기로 가득 찬 수백명의 인파가 달려오고 그들은 물소를 자기 손으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인간 탑이 만들어지고 인간들은 서로를 밟고 올라서며 지옥도를 그려낸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없다.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물소도 주인공이라고 보기 힘들도 물소를 놓친 푸줏간 주인도 주인공이 아니다. 이 영화는 그 상황 자체가 주인공이다. 어쩌면 무리들이 점점 더 표출해내는 광기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그 모든 무리들이 표출하는 에너지와 어리석음과 광기를 절묘하게 담아냈다. 연출의 힘이 이토록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영화가 사용하는 소리도 색다르다. 소리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랍권 특유의 기합을 넣는 듯한 소리와 여러 효과음들이 영화의 색들을 훨씬 더 짙고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카메라 역시도 이 모든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잘 잡아내었다.
인도에서는 소가 신성시 되지만 물소는 예외라고 한다. 힌두교에서 물소는 죽음의 신 '야마'가 타고 다니는 동물이라 하여 잡아 죽여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소 중에서도 천대받는 소인 셈이다. <잘리카투>의 배경이 되는 마을도 어딘가에서 도망 온 사람들이 만든 듯한 아주 외진 곳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인도의 다른 곳에 가면 천대를 받을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물소를 잡으려고 광인이 되어 날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다. 영화 시작과 끝 부분에 뜨는 요한묵시록 구절과도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다.
참고로 '잘리카투'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 축제에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풍습이라고 한다. 남자들이 모인 곳에 황소를 풀어놓는다. 그러면 남자들이 저마다 그 황소를 제압하기 위해 황소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올라타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일어나는 살벌한 광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영화 <잘리카투>는 연출, 소리, 인물묘사, 사건묘사 등에서 관람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모르던 새로운 색깔을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할만한 영화는 아니어서 상영관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CGV아트하우스 등에서 발견이 된다. 영화를 감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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