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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 리뷰 및 후기

by WritingStudio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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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Nightmare Alley)는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가 감독한 영화 중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초자연적(supernatural)인 장면이 없는 영화이자 다른 사람이 쓴 원작을 기반으로 한 각본(adaptive screenplay)으로 만든 유일한 영화이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의 원작 소설인 소설 나이트메어 앨리를 쓴 작가는 윌리암 린제이 그레샴(William Lindsay Gresham)이며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레샴의 인생은 그의 대표작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는 알콜 중독자였으며 남편으로서도 충실치 못했다. 그의 아내는 그런 그에게 불만이 많았고, C. S. 루이스(C. S. Lewis)의 글을 좋아하던 그녀는 결국 그레샴과 이혼하고 C. S. 루이스와 재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레샴은아내였던 사람의 사촌과 재혼한다. 그레샴, 그레샴의 아내, 아내의 사촌 셋이서 같은 집에 산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아메리칸 스타일'이라지만 이정도는 아메리카 안에서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레샴은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했다. 자살 시도 전력도 있었으며 심령술에도 빠져들었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설암 판정도 받았다. 1962년 9월 14일, 그는 딕시(dixie) 호텔에 체크인 한 뒤 수면제를 과다복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딕시 호텔은 그가 대표작인 나이트메어 앨리를 쓰던 시절에 자주 머물던 호텔이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인터뷰에서 소설 나이트메어 앨리를 읽는 일 만큼이나 그레샴에 대한 기록을 읽는 작업도 중요했다고 말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그레샴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과 그레샴의 삶은 어딘가 닮았다. 이 기묘한 닮음은 델 토로가 보기에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레샴은 스페인 내전 파병 당시 만았던 '닥(doc)'이라 불리던 전직 사이드쇼(sideshow) 출신과 나누었던 긴 대화를 바탕으로 나이트메어 앨리를 썼다고 한다.

 

사이드쇼는 유랑 서커스단이 관객을 끌기 위해 행하는 소규모 공연이다. 영화 등에서 나오는 유랑 서커스단을 보면 메인 쇼를 보여주는 거대한 천막 주변에 작은 무대를 설치하고 차력이나 저글링이나 몸개그 등을 보여주면서 지나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에 만드는 공연을 한다. 이 공연들이 사이드쇼이다. 그리고 이 사이드쇼는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유랑 극단에서는 서로 과거를 묻지 않는다. 그러니 과거를 묻지 않는 곳이 필요한 사람들만이 유랑 극단으로 모인다. 영화 초반부가 보여주듯 주인공인 스탠튼 칼라일(브래들리 쿠퍼) 역시도 본인이 저지른 행동 때문에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곳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유랑 극단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이드쇼를 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죄를 저지른다. 타고난 외모와 머리회전으로 그는 독심술과 관련된 아주 복잡한 트릭을 익힌다. 그리고는 빼어난 미모를 가졌지만 한없이 천진난만한 몰리(루니 마라)를 꼬드겨 그녀가 그와 함께 유랑 극단에서 빠져나오게 만든다.

 

유랑 극단 시절의 스탠튼 칼라일을 연기하는 브래들리 쿠퍼는 감탄스러운 수준의 연기를 해낸다. 앞서 언급했듯 칼라일은 유랑 극단에서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 행위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불분명하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헷갈려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브래들리 쿠퍼는 훌륭히 해낸다. 유랑 극단 시절은 스탠튼 칼라일의 인간성과 기질과 운명을 드러내는 시절로 스탠튼 칼라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기간이다. 스탠튼 칼라일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리고 브래들리 쿠퍼는 그 연기를 최상급으로 해내었다.

 

몰리를 꾀어 극단을 빠져나온 칼라일은 극단에서 훔친 기술과 타고난 기질을 발휘해 몰리와 팀을 이뤄 성공적인 독심술 공연을 이어간다. 이를 통해 칼라일은 큰 돈을 벌게 되지만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유랑 극단 시절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었다면 극단에서 빠져나와 성공가도를 달리는 시기에서는 돈에 대한 그의 욕망이 증폭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칼라일은 계속하여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몰리는 그런 칼라일 옆에서 계속 주의를 주지만 칼라일은 듣지 않고 몰리는 점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칼라일은 돌이킬수 없는 선택을 계속하여 해 나가며 결국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나이트메어 앨리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특정 심리가 극에 달한 인물들이다. 칼라일은 돈에 대한 욕망이 극에 달했으며 릴리스 리터 박사(케이트 블란쳇)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병적이다. 에즈라 그린들(리차드 젠킨스)은 본인이 저지른 극악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고싶어서 발버둥친다.

 

이 영화의 중심 소재를 세 단어로 추리자면 트라우마, 운명, 선택이 아닐까 싶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이 세 단어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를 통해 극심한 상처와 극심한 욕망을 가진 세 인물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욕망에 의한 선택으로 인해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 중 이 영화에서 그 운명이 자세하게 설명되는 인물은 주인공인 스탠튼 칼라일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너무도 잘 만든 영화이다. 하지만 흥행에는 참패하다시피 했다. 브래들리 쿠퍼, 케이트 블란쳇, 윌렘 데포, 루니 마라 그리고 이 외에도 여러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이자 연기도 플롯도 촬영도 훌륭한 이 영화의 미국 내에 흥행 성적은 제작비의 반 정도 수준에 그쳤다. 아마도 영화 내용이 대중 영화로서는 편치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델 토로가 감독한 영화들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몬스터들이 나오기에 보통 영화 속 현상과 현실 사이에 확실한 거리감이 느껴졌던 반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현실과의 거리감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흥행에 성공하기에는 장애물이 많은 영화인 셈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강한 암시를 주지만 설명은 없다. 그 첫장면 이후로는 대체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사건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그 첫 장면에 대한 설명과 그 첫 장면과 칼라일의 운명과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설명을 해 나간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전체가 드러나며, 그 전체가 드러난 시점에서 주인공 칼라일은 운명의 심판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그가 뱉는 마지막 대사는 길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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