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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피그(Pig) (2021) 리뷰 및 후기

by WritingStudio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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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는 부지런히 활동을 해 온 배우이다.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영화를 찍어 왔다.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1995년에 개봉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에서 그는 알콜 중독자 역할을 극사실적으로 해내었고 1996년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후 더 락(The Rock)(1996), 콘 에어(Con Air)(1997), 페이스/오프(Face/Off)(1997) 등 액션영화에 출연하여 연달아 흥행가도를 달렸다. 2002년 개봉작인 어댑테이션(Adaptation)에서는 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실험성이 강한 영화에서도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2000년대 작품 중에서는 어댑테이션을 제외하고는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직도 B급 감성 영화 순위 상위권에 올라갈만한 영화인 2010년 개봉작 킥 애스(Kick-Ass)에서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는, 솔직히 말하자면 2010년대에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잊었다. 그는 작품 활동을 계속 했다. 정확히 말하면 엄청나게 부지런히 활동했다. 2010년대에만 서른 편의 영화에 출현했으니 이보다 더 부지런하기란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킥 애스조(Joe)(2013) 정도만이 인정을 받았다. 타율로 치면 매우 저조한 10년이었다. 90년대에 '흥행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까지 붙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영화 피그(Pig)(2021)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다는 사실보다는 제목에 관심이 갔다. 독특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 '돼지'라니. 포스터 분위기를 봐도 일단 상업 영화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이클 사르노스키(Michael Sarnoski)라는 감독 이름도 생소했다. 찾아보니 피그가 그의 장편 영화 감독 데뷔작이었다.

영화는 울창한 숲에서 시작한다. 카메라가 처음으로 니콜라스 케이지를 잡았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얼핏 봐서는 극중 롭(Rob)을 연기하는 저 배우가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었다. 엄청난 덩치와 하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은 그를 완전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분장 뿐만 아니라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이 영화에서 그가 무언가를 해냈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그가 연기로 시나리오를 채웠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는 연기가 엄청나게 뛰어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가 훌륭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에 성공한 일련의 액션 영화들도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보다는 화려한 연출과 촬영이 눈을 사로잡는 영화들이었다. 어댑테이션도 시나리오가 매우 뛰어난 영화였다. 하지만 피그는 달랐다. 시나리오가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기존에 호평을 받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에서는 그 시나리오면 연기가 조금은 모자라도 완성될 수 있는 영화였다면, 피그는 연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완성이 되지 못하는 영화였다. 즉, 시나리오 자체가 좋은 연기를 만들어주는 영화가 아니라 좋은 연기가 나와야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그런 영화였다.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는 피그에서 그러한 연기를 해내었다. 내가 알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맞나 싶었다.

영화 피그는 쉽게 말하자면 남다른 과거를 가진 한 남자가 세상을 등지고 숲 속에서 단촐한 삶을 살다가 어떠한 사건 때문에 다시 본인이 과거에 활동했던 도시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이다. 과거 활동 공간으로 돌아오는 과거를 숨겼던 남자라면 수퍼 히어로급 무술 실력으로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하여 목표를 이루지만 피그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을지에 대한 힌트는 영화 초반에도 나온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제목으로부터도 유추가 가능하다.

이 영화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여러 영화제에서 각본 상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각본 자체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각본만 놓고 보면 어색하다고 느낀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여럿 보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에서는 각본상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 부분을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로 다 채워 넣었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로 인해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각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 상으로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런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영화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보여준 연기보다도 피그에서 보여준 연기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으리라 생각하면서 후보자 목록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없었다. 운이 좋지 않은 해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영화가 너무나 대중에게 관심을 받지 못해서였을수도 있다. 어쨌든 피그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너무도 훌륭했으며 아카데미가 아닌 다른 미국 내 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을 여럿 수상하였다. 그것도 주로 비평가들이 주는 상을 수상하였다. 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연기를 펼쳤는데 비평가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며, 시상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영화 피그는 익숙한 배우의 새로운 연기, 새로운 소재, 새로운 스토리 전개 방식 등 즐길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대중적으로 흥행할만한 요소는 거의 담기지 않아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겠지만, 영화를 감상과 관찰의 대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치기에는 아까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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