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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2012)

by WritingStudio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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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In No Great Hurry: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는 유명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Saul Leiter)를 대상으로 촬영한 다큐 영화다. 국내에서는 2021년 12월 29일 정식 개봉하였기에 최근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본래 개봉년도는 2012년이다. 국내 개봉 포스터에서 홍보 소재로 사용하는 영화 캐롤(Carol)은 2015년에 개봉했다.

 

영화 캐롤을 소재로 한 홍보는 적어도 나에게는 효과적이었다. 사울 레이터라는 사진 작가를 잘 알지 못했지만 영화 캐롤이 선사했던 색감과 장면들은 인상 깊이 남았기에, 그 홍보 문구 때문에 영화를 예매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울 레이터는 수십년간 뉴욕에 살면서 패션 사진과 뉴욕 거리 사진을 찍어 온 사진작가이다. 사울 레이터를 알지는 못했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들은 눈에 익었다.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는 1시간 15분 가량 되는 짧은 다큐이다. 이 안에는 사울 레이터의 솔직한 모습과 이야기가 담겼다. 사울 레이터는 누군가를 치켜세우거나 광고를 하려는 목적의 영상과는 거리가 멀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사울 레이터 자신도 그런 영상을 원치 않았다.

 

어떤 한 분야에 특출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특별함을 찾으려고 한다. 사울 레이터를 보러 온 관객들도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을 수없이 많이 찍은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가 지닌 특별함을 보러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영상 속 사울 레이터는 그저 좋은 사진을 찍고자 노력하는 사진 작가일 뿐이다. 어떤 특별함이 그가 그런 사진을 찍도록 해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말하지만 사울 레이터 자신은 본인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지도 않는 듯하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사울 레이터 자신에게는 본인이 느끼는 색에 대한 감각은 일상적이다. 그에게는 일상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사진이 보여주는 색감은 그런 색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는 갖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는 '왜'라는 질문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출한다. 왜 사진을 찍는가, 그의 사진은 왜 그런 주제들을 담는가, 왜 그런 색을 표현하는가 등의 질문을 그는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 '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찍을 뿐이다. 그는 그저 순간을 포착하기를 좋아할 뿐이다. 이에 대해 '왜'라고 묻는다면 그로서는 할 말이 없다. 자연스러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서 사울 레이터는 사진 이야기만큼이나 2002년에 사망한 연인이자 친구이자 뮤즈였던 솜즈(Soames Bantry)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울 레이터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와 만든 기억들 속에 여전히 푹 빠진 모습이다. 솜즈는 사울 레이터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가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그가 찍은 사진들이 훌륭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솜즈에 대한 기억을 사울 레이터는 소중하게 간직한다.

 

사울 레이터는 내가 본 다큐 영화 중에서 가장 소탈하고 일상적인 다큐였다. 영상 속 사울 레이터는 완벽한 무언가를 말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들지도 않으며 본인의 단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이 영상의 원제는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 즉 '사울 레이터가 말하는 삶에 대한 13가지 교훈'이지만 사울 레이터는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하는지를 말할 뿐이다.

 

영상에 나오는 사울 레이터는 80대다. 그리고 그에게도 삶이란, 삶의 의미란, 행복이란 잘 모를 무언가이다. 그는 그저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찾고 그것을 찍어내려 노력하며 살았을 뿐이다.

 

영상 마지막에 다큐 편집본을 보는 사울 레이터의 모습이 담겼다. 본인이 숨기고 싶었던 모습과 단점과 아픔들이 소탈하고 솔직하게 고스란이 담긴, 사울 레이터라는 인물을 대단한 사람으로 표현하려는 흔적이 하나도 없는 이 다큐를 보면서 사울 레이터는 웃으면서 만족스러워한다. '지나치게 진지해보이는 모습들'을 좀 쳐내면 더 좋겠다는 말과 함께.

 

사울 레이터는 이 영화가 개봉한 다음해인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이 다큐는 그의 마지막 호기심이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영상 속 그의 작업실은 어지럽기 짝이 없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작품들과 자료들은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활동과 기억과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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