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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스펜서(Spencer) 영화 리뷰 및 후기

by WritingStudio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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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

이 영화는 다이애나 스펜서Diana Spencer가 1991년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당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이 3일 동안에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서 다이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본, 국내에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라고 불리는 웨일스 공비Princess of Wales 다이애나이다.

다이애나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Queen Elizabeth II의 장남인 웨일스 공Prince of Wales 찰스Charles와 1981년 결혼하였으며 윌리엄William과 해리Harry를 낳았다.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 생활은 성격 차이로 인해 순탄치 않았으며 찰스와 다이애나 모두 결혼 생활 중에 외도를 했다. 그리하여 둘은 1992년부터 별거 생활을 했으며 1996년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7년, 다이애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다.

다이애나는 80-90년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활발한 활동과 눈에 띄는 외모로 대중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미디어의 표적이 되었다. 그녀가 입은 옷들은 그 당시 패션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랬기에 그녀가 사망하였을 때 영국 총리는 추도사에서 그녀를 '영국 국민의 공주(People's Princess)'라 일컬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1991년 크리스마스는 다이애나와 찰스가 별거하기 직전 해로, 그 둘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었을 때이다. 영화 시작 전 스크린에 중요한 문장이 떠오른다. 'A Fable from A True Tragedy.' Fable은 픽션(fiction)보다는 더 짧은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갖는다. 또한 fable은 사실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번역 시 보통 fable을 '우화'라고 쓰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fable은 이솝 우화처럼 교훈을 제시하는 fable은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가 말하는 fable이 실제 있었던 비극(a true tragedy)를 기초로 삼는다고 밝힌다. 다이애나에 대한 비극이라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녀를 사망케한 그 교통사고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 영화는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비극은 다이애나가 1991년에 보낸 3일동안의 왕가의 크리스마스 연례 행사에서 겪은 일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화에 나오는 스토리는 허구(fable) 이지만 다이애나가 겪은 비극(tragedy)만큼은 진실(true)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내용 자체에 공감이 많이 가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국 왕가의 전통은 너무도 다른 문화권 얘기이며 개인적으로 다이애나가 왕성히 활동하던 시대에 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다이애나에 대한 애착이 큰 영국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더 확 다가왔을 것이다.

다만 영화의 만듦새와 섬세함,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Stewart의 연기는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무심한 듯 섬세한 영화이다. 배우들의 표정과 촬영이 아주 섬세하다. 왕가의 크리스마스 행사가 벌어지는 성채 내부를 찍은 장면들은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 무엇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와장창 깨질 것 같은 느낌이다. 도청 장치가 없어도 엄청나게 작게 내뱉은 한 마디마저 온 성채에 다 퍼질 것만 같다.

왕가의 사람들과 왕가를 모시는 사람들 모두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극적인 표현도 하지 않는다. 다이애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직접적으로 호의를 드러내지 않으며 다이애나를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며 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은 다이애나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매기 뿐이다. 성채 자체가 너무도 정적이고 차갑기에 그 안에서 다이애나가 하는 행동들이 더욱 더 파격적으로 보인다. 다이애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마침 성채 바로 근처가 다이애나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이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왕족이 아니었던 과거 시절을 극심하게 그리워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앤 볼린Anne Bolyne이다. 이 인물에 대해 알고 모르고로 인해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소 바뀔 정도이다. 16세기 사람인 앤 볼린은 헨리 8세Henry VIII의 아내이자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헨리 8세는 후에 제인 세이무어Jane Seymour와 결혼을 하기 위해 당시 아내인 앤 볼린에게 반역죄 및 여러 죄목을 덮어씌워 아내를 교수형에 처한다. 즉, 앤 볼린은 왕비였으나 왕의 새 장가를 위해 억울하게 머리가 잘린 인물이다.

이러한 앤 볼린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누군가가 다이애나가 머무는 방에 놓아 둔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그 책을 읽는다. 다이애나가 느끼기에 이는 위협적인 경고이기도 했다. '멋대로 행동하다가는 앤 불린처럼 목이 잘릴 수 있다'는 뜻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혹은 조언적인 경고이기도 했다. '왕실에 있다가는 앤 불린처럼 될 것이다'라는.

다이애나는 앤 볼린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앤 볼린의 환상도 여러 차례 본다. 영화 속 어느 시점에서 다이애나는 혼란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 때 앤 볼린의 환영이 다이애나를 지켜준다. 앤 볼린의 환영 덕택에 목숨을 건진 다이애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고 결국 크리스마스 행사를 다 마치지 않은 채 두 아들을 데리고 성채를 나와 자유를 즐긴다.

극 중 다이애나는 연기하기가 매우 어려운 인물이다. 그녀는 정이 많고, 솔직하고, 숨김이 없으며,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며, 감수성이 풍부함과 동시에 강인함도 갖추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인해도 왕실의 전통에는 대항하기가 힘들다. 왕실 사람들이 대놓고 다이애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실 분위기의 존재 자체와 망령처럼 살아서 현재의 사람들을 속박시키는 왕실의 의미 없는 전통, 그 전통을 지키지 않는 것 만으로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음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빈틈없는 감시 등이 다이애나를 옭아맨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다이애나가 일으키는 감정 변화는 그 수와 정도의 차이가 매우 다양하다. 이런 다이애나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훌륭하게 연기해낸다. 영화의 스토리보다도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올 정도로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보여주는 연기는 훌륭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나에게는 흥미로운 배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그녀를 트와일라잇Twilight(2008)에서 처음 보았고, 개인적으로는 좋아하기는 힘든 영화였기에 트와일라잇의 두 주인공도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2014년 개봉작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Clouds of Sils Maria를 보고는 너무나 달라진 연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줄리엣 비노쉬Juliet Binoche 때문에 본 영화였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자꾸 눈이 갔다. 아무리 보아도 트와일라잇을 찍었던 배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2016년 개봉작인 퍼스널 쇼퍼Personal Shpper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영화를 기점으로 나에게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2021년 개봉작인 스펜서를 통해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 영화가 중심으로 다루는 스토리 자체는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국 문화권에서 다이애나는 이렇듯 집중 조명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마음이 느끼는 것은 다르기에 영화에 공감을 하기는 힘들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촬영과 배우들의 연기였다. 그리고, 나에게 이 영화는 결국 크리스틴 스튜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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