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영화 Review

더 메뉴(The Menu) (2022)

by WritingStudio 2022. 12. 13.
반응형
출처: IMDB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파인 다이닝(fine din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 불리는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면 비용이 꽤 많이 든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 불리려면 좋은 재료로 일반 식당이나 가정집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요리를 내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게 분위기나 서빙 등 모든 면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기도 하다.

아주 가끔씩 기회가 생겨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마다 여러 생각이 든다. 맛있긴 한데, 대단한 것은 알겠는데, 왜 이정도까지 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비교적 쉽다. 그들은 셰프이기 때문이다. 셰프이기에 뛰어난 요리를 하고 싶어하고,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상상했던 요리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기꺼이 해낸다. 그러면 이제 그 다음 의문이 든다.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극도로 섬세한 요리를 이해하고 먹는 것일까? 아니면 이해를 하지 않아도 상관 없나?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나?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을 더 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질문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요리를 내는 셰프가 전문가이고, 먹는 사람은 아무리 음식을 좋아한다 해도 아마추어인데, 왜 이렇게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정을 할 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많을까?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이가 없는 아마추어들의 지적 혹은 비판도 셰프들은 딱 잘라서 끊지 못한다. 자칫하다가는 레스토랑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낸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닌데, 그런줄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셰프들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다큐멘터리나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세계 랭킹 상위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요리들을 보면 '정말 저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기상천외하고 매력적이긴 한데 요리라는 카테고리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맛있는 요리라는 지점을 한참 지나 경로를 이탈해서 이제는 맹목적으로 새로움과 재미만을 찾는 듯한 요리들이 눈에 보였다. 영상으로만 봐도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신기한 음식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신기함 다음에 물음표가 생겼다. '저걸 요리라고 할 수 있나? 저렇게까지 가야 하나?'

영화 '더 메뉴'에는 이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요리에 대한 집착이 병적인 수준에 다다른 셰프, 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돈이 많아서 비싼 곳에 오는 사람, 영향력 있는(=무자비한) 식당 평론가와 매거진 편집자, 온갖 식재료와 조리법을 파악하고 음식 사진 찍는 데에 집착하는 음식 매니아, 돈 자랑을 대놓고 하려고 오는 사람, 허세를 부리러 오는 사람 등 슬로윅 셰프가 복수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다양하다.

이 영화는 전개 과정과 내용도 흥미진진하지만 오랜만에 주연급 연기를 하는 명배우 레이프 파인즈(Ralph Fiennes)가 펼치는 연기가 차지하는 지분도 상당하다. 연극계와 영화계 모두에서 명배우로 인정받는 파인즈는 이 영화에서 병적인 심리상태로 복수심에 불타는 셰프 줄리안 슬로윅(Julian Slowik)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파인즈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덕분에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더 메뉴'와 같은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개연성을 갖기 위해서는 범접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는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파인즈는 이에 딱 들어맞는 배우였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셰프 슬로윅이 사람들에게 요리 하나가 서빙이 될 때마다 설명을 해 주는 장면이 상당 시간을 차지한다. 이 장면들은 사건의 변곡점을 알리는 데에도 중요하고 영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에도 아주 중요하다. 이 설명 장면은 연극의 무대 연기와 닮아 있고, 연극계에서도 명배우로 불리는 파인즈는 이 장면들에서 무대 연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다. 여러모로 파인즈는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파인즈와 함께 주인공 역할을 하는 마고(Margot)역은 안야 테일러-조이(Anya Taylor-Joy)가 맡았다. 마고는 셰프 슬로윅이 복수 대상으로 고른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어쩌다-어찌보면 그 레스토랑에 온 사람 중 가장 한심한 인간 때문에-그 레스토랑에 오게 되었다. 슬로윅 입장에서는 불청객이자 생각치 못한 불편한 변수였다. 마고는 파인 다이닝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셰프 슬로윅에 대한 팬심도 없다. 그러니 선입견 없이 모든 상황을 상식에 기초해서 본다. 즉, 이 영화에서 마고는 바른 말을 대변하는, 어찌 보면 작가와 감독을 대변하는 역할이다. 파인즈와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안야 테일러-조이가 마고를 연기함으로 인해 마고라는 캐릭터도 슬로윅과 어울리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갖추게 되었다. 테일러-조이는 워낙에 그 자체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우이다. 그녀를 '스플릿(2016)'에서 처음 봤을 때 느낌도 '신비하다'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매력이 넘친다. 분위기 자체가 미스터리/스릴러 영화와 맞으면서 매력까지 넘치는 여배우는 찾기가 매우 힘들다. 그녀는 '더 메뉴'에서도 이러한 매력들을 십분 발휘한다.

파인즈와 테일러-조이 모두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영화의 느낌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질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제작진은 충분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 줄 배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베테랑 배우인 존 레귀자모(John Lequizamo)를 캐스팅했다. 이 영화에서 한 물 간 무비스타를 연기하는 레귀자모는 외계인같은 두 주연 배우 사이에서 여기는 지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말하자면 지구인 역할을 유쾌하게 해낸다.

영화 '더 메뉴(The Menu)'는 요리에 대한 집착과 개인적인 괴로움이 극에 달해버린 최정상급 스타 셰프가 벌이는 복수극이다. 그는 아주 철저한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스타 셰프, 줄리안 슬로윅이 복수 대상을 골라 아주 특별한 저녁 메뉴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 스토리 안에 들어간 내러티브는 단순하지 않다. 준비된 저녁 메뉴 순서대로 음식이 하나하나 나오면서 발생하는 사건들과 대사들은 강렬하면서도 그 주제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특히나 파인 다이닝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에 몰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응형

'영화 > 영화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바타: 물의 길(Avatar: A Way of The Water) (2022)  (0) 2022.12.15
그래비티(Gravity)(2013) 재개봉(2022)  (0) 2022.12.13
올빼미(2022)  (2) 2022.12.07
본즈 앤 올(Bones And All) (2022)  (0) 2022.12.04
홍상수 - 탑(2022)  (0) 2022.11.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