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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본즈 앤 올(Bones And All) (2022)

by WritingStudio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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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DB

사람은 각기 다른 본성을 타고 나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일반적인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교류를 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가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내 선택에 의해서이다.

일반 사람들과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본성을 타고 난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꿈 꾸어 보기도 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이는 순간적일 뿐이다. 그들이 타고난 본성에 의해 그 관계는 깨어진다. 그들에게 남은 방법이라고는 그들과 같은 본성을 타고난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같이 지내는 것 뿐이다.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가 감독한 영화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은 본인이 선택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본성을 타고난 인물들에 대한 영화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사람을 먹어야 하는 본성을 타고났다. '이터(eater)'라 불리는 이들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본성에 의해 사람을 씹어먹는다. 이터를 낳은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식을 보호하고 이해하고 그 비극적인 본성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라 믿으며 희망을 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결국 떠나가게 된다.

주인공인 매런이 최초로 만나게 되는 이터인 설리는 노년에 접어 든 이터이다. 이터로서 그 나이까지 혼자서 생존해 온 설리는 스스로를 '나는'이 아닌 '설리는'이라고 부르는 분열증적인 정신상태에 놓였다. 이터들은 본인의 본성을 스스로도 증오한다. 설리가 보여주는 분열증적 심리상태는 노년에 접어들기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해 온 세월에 의한 결과가 아닐까. 설리는 이제 막 본인의 본성을 알게 된 매런을 발견하고는 매런을 자신의 외로움을 끝내 줄 희망처럼 여긴다. 매런은 그런 설리를 이상하게 여겨 떠나지만 설리는 매런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집착을 보인다. 설리가 지닌 매런에 대한 집착은 이 영화 이야기상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설리로부터 벗어난 매런은 다른 도시에서 운명적인 상대인 리를 만난다. 이제 막 스스로를 깨달은 매런과는 달리 리는 매런과 나이는 비슷하지만 본성을 깨달은지는 꽤 지난 상태이다.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설리를 떠났던 매런은 이번에는 본능적인 호감에 이끌려 리에게 접근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잠시나마 행복한 보통의 삶을 꿈꾸지만 이는 순간에 불과하게 된다. 리는 비극적인 사고 상황에서 매런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죽어가는 리는 매런에게 자신을 먹어달라고 말한다. 뼈도 남기지 않고(Bones And All) 모조리 다.

영화에서 그리는 '이터'들은 단순히 뛰어난 상상력의 결과가 아닌 우리 사회 속 누군가들에 대한 상징이다. 선택하지 않은 본성 때문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상징이 아닐까 싶다. 실제 사회 속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이유 없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마치 괴물처럼 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이터가 상징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아다니노가 감독한 예전 영화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인과 같은 양심과 감정과 사회성을 지녔지만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본성 때문에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유 드안젤리스(Camille DeAngelis)가 쓴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해서 구체적인 원작 내용은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본즈 앤 올'에는 관객 시선을 사로잡을 요소들이 많다. 일단 '이터'라는 설정에 어울리게 이터의 본성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강렬한 색감이 나온다. 그러다가도 내면 중심의 장면이 나올 때면 약간 더 파스텔톤으로 바뀐다.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은 카메라에 담지 않았음에도 옷이나 얼굴에 묻은 피나 인물들의 자세나 소리 만으로도 관객들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배우들 연기도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중요 요소이다. 주인공인 매런(Maren)역을 맡은 테일러 러셀(Taylor Russell)은 개인적으로는 생소한 배우였다. 매런은 극 중 감정 변화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본인의 정체성을 본인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저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평범한 10대 소녀이다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시점에 이터로서 본성을 드러내고는 당혹감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떠난 뒤 홀로 남은 상황에서 먼 길을 떠나야 할 상황이 오자 내면이 강한 모습으로 바뀐다. 그 뒤로도 매런은 만나는 인물에 따라, 처하는 상황에 따라 각양각생의 감정상태를 느끼게 되는데 테일러 러셀은 이 모든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었다. 개인적으로는 테일러 러셀의 연기가 어색하다고 느낀 부분이 전혀 없었을 정도였다.

노인 이터인 설리(Sully)를 연기한 명배우 마크 라일런스(Mark Rylance)는 역시나 차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 설리는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인물이다. 그 마음은 노년에 접어들 때까지 설리가 겪은 모든 경험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상 설리의 배경이나 성격을 묘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중심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크 라일런스가 펼치는 연기로 설리를 설명해야 했고, 그는 역시나 설리 역을 그야말로 메소드하게 해내었다. 마치 설리가 무슨 일을 겪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왜 이렇게 되었고, 설리의 진심은 무엇인지를 다 아는 상태에서 펼치는 듯한 그의 연기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는 수식어가 지나치지 않았다.

리(Lee)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는 이 영화에서 대중적인 매력을 담당했다. 물론 연기력도 좋은 배우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어느 영화에서나 본인 역할을 잘 해낸다. 최근작 '듄(Dune)'이 워낙에 큰 흥행을 하면서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유명 배우 이미지가 생겼고 경력 시작부터 워낙 대작인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통해 대중에 소개 된 배우이기 때문에 고예산 영화배우 이미지가 강하지만 티모시 샬라메도 인터스텔라 이후 연기력이 중심적으로 작용하는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연기력도 증명을 해왔다.

영화 '본즈 앤 올'에 나오는 이터들은 본인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잡아먹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인물들이다. 살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어야한가는 것 외에는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본인이 이터라는 사실을 증오한다. 그들은 우선 스스로를 싫어한다. 사람을 잡아먹어야 하는 그 끔찍한 본성을 그들도 버리고 싶어하지만 본성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남은 방법은 어떻게든 상황을 가능한 한 합리화하는 것 뿐이었고, 이를 위해서 이터들은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운다. 고독사를 한 사람만 잡아먹는다든지, 가족과 자녀가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 무엇도 이들이 느끼는 원초적인 죄책감과 자기혐오를 없애주지는 못한다. 그 원칙이라는 것도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도 생명체들이기에 본능적으로 죽음보다는 삶을 원하고, 삶의 끝 까지는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본즈 앤 올'은 이에 대한,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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