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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 영화와 원작 소설과의 관계

by WritingStudio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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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한 후기는 최근에 이미 썼다. 다 썼지만 다 쓰지 못한 글이었다. 한 가지 궁금증이 계속 일었기 때문이다. '원작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 걸까?'

 

영화 후기를 쓰고 나서 원작 소설이 담긴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주문했다. 책 배송은 무척 빠르다. 하루면 온다. 책 띠에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원작"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그 광고 문구가 판매에 도움이 될는지는 미지수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훌륭한 영화를 볼 사람들은 극히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기에서도 썼지만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주 훌륭한 영화였다. 흠 잡을 구석도 없었고 여운도 길고 짙었다. 연출 방식도 탁월했고 배우들이 펼친 연기도 훌륭했다. 드는 궁금증은 그저 하나였다. '어디까지가 원작 내용인거지?'

 

원작 소설을 읽고 나자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한 보다 확실한 판단이 들었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훌륭한 영화이다. 원작 소설은 아이디어의 단초와 주요 소재를 제공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반딧불이라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원작 소설은 이 영화의 확실한 일부 정도였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와는 공간적 배경도, 진행 방식도, 등장 인물도 다르다.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가후쿠가 연출해내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소설 속 내용인지 아닌지. 만약 그 내용까지 소설에 담겼다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물론 그럼에도 매우 좋은 평가를 내렸겠지만-약간은 떨어졌을 것이다. 한 연극에서 여러 언어가 등장하면서 언어의 한계와 언어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동시에 표현해내는 그 연출은 길이 남을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도 원작 소설에 기반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아니었다. 소설에는 그런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을 읽은 후 오히려 영화에 더 감탄하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감독은 이 원작을 읽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이런 영화를 찍어냈을까. 하마구치 감독은 원작을 읽고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후쿠를 너무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느꼈던 것일까.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까지 담담할 수가 있나?' 이 질문이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작 소설에서 가후쿠는 아내에 관한 어떤 심각한 사실을 아는 상태였지만 아내와는 그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여기에서 말과 진실의 관계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긴다. 이로부터 각 배우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체호프의 희곡을 연기한다는 장면을 상상해내었다면 실로 놀라운 상상력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상상력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놀라운 영화로 만들어내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이 그가 쓴 단편소설 반딧불이에서 확장되어 탄생했듯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단편에서 확장된 훌륭한 장편이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도 극장에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가 쓴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 단편을 통해 이런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더없는 찬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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