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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Review

매트릭스: 리저렉션(The Matrix Resurrections) [2021] 리뷰

by WritingStudio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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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는 영화 그 이상이었다. 의미와 재미를 모두 담아낸 이 걸작에 만장일치 수준으로 호평이 이어졌고 관련 서적이 쏟아져나왔으며 대학 철학 수업에서도 매트릭스는 매번 언급되었다.

<매트릭스>는 내용만 보자면 대중들이 멀리할 만한 영화였다. 말하자면, 너무 의미 투성이었다. 가짜 세상인 매트릭스, 그 안에서 근원적인 의심을 품으며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퇴근 후에는 유명한 해커로 활동하는 토마스 앤더슨(Thomas Anderson). 그가 인류를 구원해줄 '그(The One)'인 '니오(Neo)'라고 믿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앤더슨을 설득해내고 빨간 알약을 먹게 만든다. 그렇게 앤더슨은 매트릭스를 벗어나 진짜(real)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힘을 얻게 되고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던 스미스 요원(Agent Smith)를 제압하면서 1999년 개봉작 <매트릭스>는 끝이 난다.


지금은 자매가 된 당시 워쇼스키 형제도 <매트릭스>의 스토리라인만 가지고는 영화가 성공하기란 힘들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스토리라인만큼이나 강력한 액션씬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매트릭스는 의미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 모두에서 찬사를 받는 영화가 되었다.

<매트릭스>는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 그 3부작동안 니오(Neo) 팀은 매트릭스를 박살내고 인류를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의 창조자를 찾아나서며 결국 본인을 희생하면서 기계들과의 전쟁을 끝낸다. 니오는 그렇게 본인의 목숨을 바쳐 평화를 이루어낸다. 이것이 2003년 <매트릭스: 레볼루션(The Matrix Revolution)>의 결말이다.

그리고 거의 20여년이 흐른 뒤인 2021년, <매트릭스: 리저렉션>, 즉 매트릭스 '부활편'이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는 말 그대로 죽은 줄만 알았던 니오가 부활한다. 그런데 그 부활이 멋있지만은 않다. 살아는 있으나 또다시 매트릭스 안에 갇힌 상태다. 트리니티도 마찬가지다. 니오와 트리니티 모두 과거에 자신들이 이룬 위업은 모두 잊은 채 매트릭스 안에서 관리당하며 살아간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구원을 받았던 이들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일깨워주고 구출해낸다. 그리고 니오와 트리니티는 결국 또다시 매트릭스를 파해한다. 하지만 매트릭스를 박살내지 않는다. 그들은 매트릭스를 재구성(reshape)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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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003년에 걸친 3부작에서는 매트릭스의 세계관과 인간 vs 기계라는 대립구도가 중심 소재였으며 그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니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였다. 그 3부작에서 니오는 불굴의 의지로 온갖 난관을 헤쳐나간 뒤 인류를 구해낸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는 무게중심은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는 트리니티에 대한 니오의 사랑이 중심 소재이다. 니오는 트리니티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오로지 트리니티를 구해내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친다. 결국은 트리니티를 구해내고, 이번에는 니오가 아닌 트리니티가 영웅적인 능력을 각성한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매트릭스 4라기보다는 번외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매트릭스 3부작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강렬함은 이 영화에는 없다. 비주얼적인 면도 그리 강력하지 않다. 어느 모로 봐도 힘들 좀 빼고 만든 영화의 느낌이 난다.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를 두고 농담을 하는 <데드풀>적인 면을 보이기도 하며 상업적으로 성공할 만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강력한 새로운 장을 열기보다는 전작들만큼 빡빡하지 않게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5편이 나올 가능성은 있다. 많은 부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우선 워너 브라더스는 '매트릭스'라는 소재를 좀 더 써먹을 마음이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느낌상 워쇼스키 자매는 '매트릭스'라는 소재를 닳고 닳을 때까지 써먹을 마음은 없는 듯하다. 아마도 저작권은 워너 브라더스 측에 있을테니 워쇼스키 자매 없이 속편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 리저렉션> 정도로 '매트릭스' 소재는 마무리 짓는게 어떤가 싶다. '매트릭스'는 강력한 소재긴 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소재는 아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도 없다. 물론 만들어 내려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이미 중심 소재가 가진 힘은 많이 소진이 된 상태다. 매트릭스 3부작을 통해서 표현해 내야 할 모든 것을 표현해내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정도는 2000년 근처를 강렬하게 장식했던 매트릭스 3부작에 대한 향수로 어느 정도 즐기며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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