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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Tech

21세기 필수 상식, CRISPR(크리스퍼)

by WritingStudio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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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CRISPR('크리스퍼'라고 발음한다)는 과학 뉴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만 알던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소리에 관심을 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뭔진 몰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본 단어가 되었다(한국에서는 '유전자 가위'라고도 하는 듯하다). '문과를 위한 과학 상식'에서 다루기에 적합한 주제인 셈이다.

CRISPR란 무엇일까? CRISPR를 풀어쓰면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이다. 벌써 머리가 아프고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참도록 하자. 외울 필요도 없다. 다만 CRISPR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풀어서 썼을 뿐이다.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줄여서 CRISPR.

이렇게 생긴 CRISPR에 왜 그리 관심을 갖는 것일까? 바로 저 스페이서(spacer)들이 과거에 겪은 바이러스들에 대한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침범한 바이러스 정보를 기억해뒀다가 다음번에 똑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투하려하면 CRISPR 정보를 이용하여 바이러스를 파괴한다. 물론 이런 작업을 하려면 CRISPR 외에 다른 도구들도 필요하다. 그림에서도 보이듯 CRISPR 자체는 DNA 유전자 정보일 뿐이다. 저 정보를 활용해서 바이러스를 잘라내는 역할을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효소(enzyme)들이 그 역할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효소가 Cas9('캐스 나인'이라고 읽는다)이라는 효소이다. 그래서 CRISPR와 Cas9을 활용한 일련의 작업 메커니즘을 칭할 때에는 CRISPR/Cas9이라고 쓴다. 이를 아주 간단히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아주 단순화한 CRISPR/Cas9 개념도

이 CRISPR/Cas9 시스템을 발견하고 활용법을 찾은 학자들(Emmanuelle CharpentierJennifer Doudna)은 202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물론 단순히 CRISPR/Cas9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서 노벨상을 주지는 않았다. 저 CRISPR/Cas9의 무궁무진한 활용법이 그 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CRISPR 발견 전에도 유전자 편집은 이루어졌다. 다만 엄청나게 시간이 들었고 비용도 매우 비쌌다. CRISPR 이전에는 유전자 편집을 할 때 편집자가 유전자를 직접 들여다보고 자르거나 편집할 부분도 직접 찾아야했으며 잘라내는 작업도 직접 해야했다. 그러니 엄청난 시간과 돈을 소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결과도 불안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CRISPR/Cas9의 출현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전자책이 나오기 전에는 책에서 특정 단어를 찾으려면 책 전체를 뒤져야 했다. Ctrl+F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자책이 출현한 후로는 책에서 특정 단어를 찾으려면 Ctrl+F로 '찾기'기능을 활용하든가 킨들 같은 앱을 사용할 경우 찾기 창에 단어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CRISPR/Cas9로 인해 이제 유전자를 대상으로 Ctrl+F(찾기), Ctrl+C(복사하기), Ctrl+V(붙여넣기), Ctrl+X(자르기) 등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자연계에 내장된 로직을 활용하는지라 정확도도 그 전과는 비교도 못하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CRISPR/Cas9 기술은 비용이 싸다. CRISPR/Cas9은 싸고 정확한 유전자 편집기술인 셈이다. 스페이서에 바이러스 정보가 아닌 찾고 싶은 배열정보를 입력하면 CRISPR/Cas9 시스템이 정확히 그 배열을 찾아준다. 그러면 필요에 따라 그 배열을 잘라버리거나 다른 배열로 교체하거나 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본 글에서 표현한 CRISPR/Cas9은 매우 단순화되었다. CRISPR 관련 내용을 처음 접한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위의 도식은 CRISPR/Cas9 시스템에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만 그렸을 뿐이다. 전문적인 자료는 이미 인터넷에상에 엄청나게 많다. 이 글은 CRISPR 관련 내용의 대강을 보여주기 위한 글이다. 좀 더 찾아보면 crRNA, tracrRNA, sgRNA, PAM 등 여러 개념들과 만나게 된다. 게다가 CRISPR와 연합하는 효소가 Cas9뿐만도 아니다. Cas9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러한 보다 전문적인 내용과 만나기 전에 대강을 파악해두는 일도 중요하기에 극히 단순화된 도식을 그려보았다.

CRISPR 관련 기술을 다룬 아주 잘 만든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한 편을 소개한다. 제목은 'Unnatural Selection'이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영상 4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CRISPR 관련 기술로 인해 무엇이 가능해졌는지, 이 기술이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이 기술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잘 찍어냈다.

CRISPR가 어떻게 발견이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까지 이르게 되었는지가 궁금한 사람은 유명한 전기 작가가 된 월터 아이작슨이 최근에 낸 책 <The Code Breaker>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글을 쓰는 현 시점에서는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조금만 기다리면 곧 번역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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