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 맷 데이먼(Matt Damon),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 거기에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Ben Affleck)이 각본에 참여한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조합이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The Last Duel)>(2021)은 실화를 기반으로 삼는다. 그 실화란 장 드 카루주 경(Sir Jean de Carrouges)과 자크 드 그리(Jacques de Gris)가 1386년 12월 29일에 벌인 결투이다.
자크 드 그리는 장 드 카루주 경의 아내를 강간한 혐의로 고소당한다. 당시에는 여성은 그러한 수모를 겪고도 그 사실을 비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일이 많았지만 카루주 경의 아내인 마그리뜨(Marguerite)는 달랐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고 시비를 가리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이 사건에 대한 장 드 카루주의 입장, 자크 드 그리의 입장, 마그리뜨의 입장을 각각 보여준다. 한 사건에 대한 이들 각자가 믿는 진실은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기억하는 강조점이 다르며 각자의 기억이 선택한 상황들도 각기 다르다. 장 드 카루주 입장에서는 본인은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고 결투까지 마다하지 않는 충실한 남편이다. 자크 드 그리는 마그리뜨와 관계한 자신의 행동이 강간이 아니었다고 굳게 믿는다. 마그리뜨의 입장에서는 남편인 장 드 카루주도 본인의 자존심과 명예만 위하는 사람이며 자크 드 그리는 망상에 빠진 강간범이다.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마저 마그리뜨를 의심하고 배신하는 행동을 한다. 시어머니는 마그리뜨에게 입을 닫고 그저 살아가야했다고 말한다. 사방이 모두 적 뿐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는 각본과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나다. 각본은 니콜 홀로펜서(Nocole Holofencer), 맷 데이먼, 벤 에플렉 셋이 같이 썼다.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이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드 그리에 관한 각본을 썼는데, 그 둘이 생각해보니 남성인 자신들은 영화 내용상 매우 중요한 마그리뜨 입장에서의 각본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인 홀로펜서에게 마그리뜨 분의 각본을 써주기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주연 세 인물에 대한 심도 깊고 섬세한 각본이 탄생하였다.
각본이 섬세한만큼 연기도 섬세해야 했고 배우들은 이를 훌륭히 해내었다. 장 드 카루주는 본인은 신실하고 충실한 남편으로 연약한 아내를 잘 돌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한때는 친구였던 자크 드 그리에 대해서도 배은망덕하며 영주인 삐에르 옆에서 아첨을 하며 자신의 지위를 빼앗아간 원수로 여긴다. 자크 드 그리는 다혈질이자 세상물정 모르는 카루주를 자신이 언제나 보호해주었다고 생각하며 마그리뜨가 먼저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고 마그리뜨를 향한 자신의 사랑은 진실된 것이며 따라서 그가 저지른 행위도 강간이 아니라고 믿는다. 마그리뜨 입장에서는 남편 카루주는 거칠기만 하고 섬세한 면이라고는 없다. 자신의 내조가 아니었다면 집안이 잘 돌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며 게다가 아무말이나 내뱉는 시어머니도 본인이 잘 견뎌내어주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신실했으며 자크 드 그리는 그저 흉악한 강간범일 뿐이다.
각본이 준 상황이 이러하니 연기를 할 때에 같은 대사라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야하며 표정이나 행동도 차이를 두어야 한다. 드러나는 성격도 마찬가지다. 이 미묘한 차이를 세 주연 배우는 훌륭히 연기해낸다. 맷 데이먼이나 아담 드라이버야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라 이 영화에서 보여준 훌륭한 연기도 '원래 잘 하니까'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마그리뜨를 연기한 조디 코머(Jodie Comer)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거의 TV 시리즈에서만 모습을 보였던 조디 코머였고, 주연급으로 나온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프리 가이>였기에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는 느낌은 받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이번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보여준 조디 코머의 연기는 달랐다. 등장인물 중 가장 복잡한 심경을 가졌으며 모든 인물의 입장 차이가 주로 마그리뜨에 의해서 발생하는만큼 마그리뜨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는데 조디 코머는 이를 아주 잘 연기해냈다. 맷 데이먼이나 아담 드라이버가 보여준 '완전히 변신하는'느낌은 조금 약했지만 조디 코머가 연기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영화에 출연한건 이번이 처음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훌륭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노련하고 정교한 연출이 더해졌다. 이 영화에서는 같은 장면이 세 번 반복되는 일이 많다. 카루주의 입장, 자크 드 그리의 입장, 마그리뜨의 입장. 게다가 영화도 두 시간 반 짜리다. 이런 영화를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게 연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각본도 살려내야 하고 배우들도 잘 잡아야 하며 장면적인 매력도 있어야 하고 결투 장면에서는 액션감도 살려내야 한다. 에니그마같은 <블레이드 러너>, 장엄한 액션영화인 <글레디에이터>, 팽팽한 긴장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블랙 호크 다운>, 각본과 함께 장면적 매력도 대단한 <프로메테우스>와 <마션>등의 영화를 두루 감독한 리들리 스콧은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감독으로서 제격이다(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을 다 읊자면 끝도 없다).
이 영화는 시대적인 의미도 담았다. 600년도 더 지난 시기에 이루어진 결투를 이런 공을 들여 재구성한 이유가 단지 그 결투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마그리뜨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둔다(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자막이 이를 암시한다). 진실을 말하는 마그리뜨가 영화 속에서 겪는 고초와 수모를 '그냥 600년 전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연관하여 드는 생각들이 꽤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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